조택원 ()

조택원
조택원
무용
인물
해방 이후 한국무용협회 이사장, 한국민속무용단 단장 등을 역임한 무용가. 친일반민족행위자.
이칭
이칭
福川元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907년 5월 22일
사망 연도
1976년 6월 8일
출생지
함경남도 함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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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해방 이후 한국무용협회 이사장, 한국민속무용단 단장 등을 역임한 무용가. 친일반민족행위자.
생애 및 활동사항

1907년 함경남도 함흥에서 출생했다. 아버지는 대한제국 군관학교 제1기 출신으로 참령(參領)의 지위에 올라 있던 종완(鐘玩)이며, 어머니는 김금오(金琴梧)이다. 7세 때 홍원보통학교(洪原普通學校)에 입학, 3학년 되던 해 경성 교동보통학교(校洞普通學校)로 전학, 휘문고등보통학교(徽文高等普通學校)를 거쳐 보성전문학교 법과에 진학했으나, 상업은행 소속 정구선수로 활동하기 위해 2학년 때 학업을 중단했다. 1927년 11월, 당시 일본 현대무용계의 거두로 꼽히고 있던 이시이[石井漠]의 무용 공연을 경성공회당에서 관람한 뒤 무용에 매료되어 필생의 업으로 삼을 것을 다짐하였고, 가족과 주변 사람들의 만류에도 1928년 1월 초 동경으로 건너가 이시이문하가 되면서 본격적인 무용수련을 쌓았다.

1929년 봄 처녀작 「어떤 움직임의 매혹」을 동경(邦樂座)에서 발표, 그 재능을 인정받게 되었고, 그 뒤 이시이무용단의 일원으로 동양권의 주요 도시를 순연했다. 1932년 이시이가 실명하게 되면서 독립을 결심하고 경성으로 돌아와, 중앙보육학교 무용담당 교수로 취임하는 한편, 시내 영락정(永樂町)에 조택원무용연구소를 개설, 후진양성에도 힘을 기울였다. 1933년 2월 작품 「승무의 인상」(「가사호접」)·「우울」·「땅에 바친다」·「사랑의 슬픔과 기쁨」 등으로 제1회 작품발표회를 경성공회당에서 가지게 된 것을 시작으로, 그의 창작생활은 1958년 7월 일본 동경 히비야공회당[日比谷公會堂]에서의 은퇴공연까지 30년 가까이 계속되었다. 그의 대표작으로는 「가사호접」(1935)·「포엠」(1941)·「춘향조곡」(1941)·「학」(1941)·「부여회상곡」(1942)·「신로심불로」(1948) 등을 들 수 있다.

1941년 국민총력조선연맹 주최, 조선총독부 후원으로 제작된 내선일체 주제의 「 부여회상곡」 연출과 안무 및 평가 좌담회 참석, 1942년 국민총력조선연맹 주최 문화선전협의회 참석 및 발표, 1942년부터 황군 위문 및 방공대원, 산업전사 및 유가족 위안을 목적으로 무용을 공연, 1944년 조선연극문화협회가 회원 숙정을 모고표로 실시한 자격심의회 부문위원으로 활동했다. 공연이나 시찰로 전세계를 여행하면서 무용가·문인·화가·음악가·배우 등 저명한 예술인들과의 교우는 물론 정치·외교·경제·학계 등의 쟁쟁한 인사들과의 교분을 얻어, 이들과의 대화를 통해서 견식과 철학을 넓혔다. 항상 예술과 민족과 조국은 공동운명체라며, 인간의 영혼과 민족의 얼이 작품 속에 여과되지 못한 예술은 무가치하다고 역설하였다. 1961년 5월 오랜 기간의 타향살이를 청산하고 귀국하면서부터는 주로 후진들의 사회적 지위 향상과 활동여건의 개선을 위하여 진력해, 사단법인 한국무용협회 이사장(1962∼1963)·상임고문(1964∼1976), 사단법인 한국민속무용단 설립자 겸 단장(1969∼1972), 해외파견 한국민속예술단 단장(1970·1971·1973), 한국일보 사우(1962∼1976) 등으로 활약했다. 1972년부터 예술원회원으로 활동했다. 1976년 6월 8일 사망했다.

조택원의 이상과 같은 활동은 「일제강점하 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 제2조 제11·13호에 해당하는 친일반민족행위로 규정되어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 보고서』 Ⅳ-17: 친일반민족행위자 결정이유서(pp.231∼257)에 관련 행적이 상세하게 채록되었다.

상훈과 추모

한국무용협회 공로상(1964), 서울특별시문화상(1966), 예술원 공로상(1974), 금관 문화훈장(1974) 등을 받았다.

참고문헌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 보고서』Ⅳ-17: 친일반민족행위자 결정이유서(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현대문화사, 2009)
『신무용사: 국립극장 30년』(안제승, 중앙국립극장, 1980)
『가사호접(袈裟胡蝶)』(조택원, 서문당, 1973)
『신무용의 본질과 요람기가 남긴 영향』(안제승, 숭문사, 1972)
「나의 이력서」(조택원, 『한국일보』, 1976.3.25∼6.4)
「趙澤元의 舞踊」(牛山充, 『東京 音樂舞踊新聞』, 1953.1.15)
관련 미디어 (2)
집필자
성주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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