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종명 ()

양촌집 / 주종명
양촌집 / 주종명
한문학
작품
조선 초기, 한양 천도 후 종각의 종에 새기기 위하여 권근(權近)이 지은 명(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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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초기, 한양 천도 후 종각의 종에 새기기 위하여 권근(權近)이 지은 명(銘).
구성 및 형식

작자의 문집인 『양촌집(陽村集)』 권23에 「주종명병서(鑄鐘銘幷序)」라 하여 서문과 함께 실려 있고, 『동문선(東文選)』 권50에도 수록되어 있다.

내용

조선이 건국된 지 3년 만에 한양에 도읍을 정하고, 그 이듬해에 큰 종을 주조하여 시가에 종각을 세우고 종을 달았는데, 이 글은 그 종에 새기기 위하여 권근(權近)이 지었다. 천명을 받아 새로 나라를 세워 태평시대를 이룩하였음을 기리고, 앞으로의 번영을 기원하는 내용이다.

서문에서는 이 글을 짓게 된 경위를 기술하였고, 명(銘)의 형식은 운문으로서 자수는 대부분 4언이며 대개 격구로 압운이 되어 있는데 본문은 4자 20구로 되어 있다. 그 중 명(銘)을 번역하면 다음과 같다.

“아! 훌륭한 우리 임금, 천명을 받아 나라를 세웠으니 새로 와 도읍한 곳이 한강의 남쪽이로다. 옛날 송도 적에는 국운이 쇠진하더니, 우리 임금이 대신하여 덕으로 학정(虐政)을 쓸었도다. 백성들 무기를 보지 못한 채 싸우던 아침 씻은 듯 청명하였고, 어질고 지혜로운 이 힘 다 바쳐 태평시대로 올렸도다. 먼데 가까운데서 따라 이미 번성하였으니 이 종을 만들어 아침 저녁 울리도다. 우리의 공렬(功烈)을 여기에 새겼거니, 아! 신도(新都)를 진압하여 천만년을 이으리.”

의의와 평가

명(銘)은 어떤 기물(器物)에 의미를 붙이거나, 그 기물을 통하여 송축(頌祝)하는 기능을 한다. 이 글은 후자에 해당하는데, 조선 왕조가 송도에서 한양으로 천도하고 나서 그 공을 기리기 위해 종을 만들었다. 태조(太祖)의 위업을 칭송하고 새 도읍지를 찬양한 내용은 조선 초의 악장(樂章)과 유사하며, 권위와 위엄을 돋보이게 하고자 『시경(詩經)』의 문구를 많이 따른 점이 주목된다.

참고문헌

『양촌집(陽村集)』
『동문선(東文選)』
『한국한문학개론(韓國漢文學槪論)』(이종건·이복규, 보진재, 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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