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후기에 이곡(李穀)이 지은 가전체 소설. 한문본. 『동문선』 권101과 『가정집(稼亭集)』에 전하고 있다. 「죽부인전」은 대(竹, 죽)를 의인화하여 절개 있는 부인에 비유하여 쓴 작품이다.
주인공 죽부인은 이름이 빙(憑)이다. 위빈(渭濱)에 사는 은사 운(篔, 왕대)의 딸이다. 그 선대에 문적(책)과 가까이 하여 사관이 되고 특히 문인과 친교가 있었다. 서두에는 죽부인의 소개와 그의 선조가 음악에 조예가 깊어 당시에 발탁되어 우대를 받았음을 말해주고 있다.
바로 악기로 사용된 제구(製具)가 죽부인이 선조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다. 퉁소(筒簫)처럼 당시 사회에서 우대를 받아온 것이다. 진(秦)나라가 학정함에 창랑(蒼筤)의 후손은 숨어 지냈다. 한나라 때의 문도는 저생(楮生)과 같이 놀았다. 주나라 때의 간(竿)은 태공(太公)과 더불어 위빈에서 낚시질하며 곡직(曲直)을 충직하게 간하였다.
총각인 의남이 음사(淫詞)를 지어 죽부인을 희롱하였으나 정숙한 그는 절개로써 물리치고 드디어 부모의 권고에 따라 송대부와 혼인하였다. 그러나 불행히도 송공은 선유(仙遊)하러 가서 돌아오지 않으므로 위풍(衛風)을 때때로 노래하였다. 그러다가 청분산(靑盆山)에 집을 옮겨가 고갈병이 나서 치료하지 못하고 사람에게 의지하여 늦도록 절개를 지키며 살았다.
이곡은 성리학의 영향으로 삼강오륜을 역설하고 의를 바탕으로 한 충 · 인에 입각한 효를 논하여 충효론을 주장하였다. 「죽부인전」은 당시 음란한 궁중과 타락한 사회에 경종을 울리고 점차 절부(節婦)가 드물어져 감을 한탄해서 지은 것이다. 음란한 노래의 사회적 병폐를 지양하는 뜻에서 제목이 암시하는 것처럼 죽(竹, 節婦)을 대상으로 하여 부인의 높은 절개를 표하여 반증한 것이다.
「죽부인전」의 구성과정이 변(籩, 왕대)의 음률을 통하여 조정의 전악관의 악서에서 퉁소의 후손을 두고 있는 것은 순탄한 권선적인 완전구성이다.
첫째 단락은 죽의 이름과 성을, 둘째 단락은 죽부인의 선계와 공덕을 찬양하였다. 대나무의 지조와 성품을 강조하였으며 송공과 혼인하게 되는 과정을 그렸다. 셋째 단락은 사씨(史氏)의 평을 빌려 자기 의사를 강조한 내용으로 사물 하나하나를 연관성 있고 조리있게 표현하였다.
이곡이 살던 당시의 고려는 국운이 기울어져 궁궐이나 여염의 기강이 풀려서 남녀관계가 극히 문란하였다. 이 퇴폐적인 사회에 경종을 울리기 위하여 일종의 열녀전을 「죽부인전」이라 칭하여 세상에 내어놓으니, 죽부인을 당시의 이상적인 여인상으로 부각시키려는 저자의 의도를 짐작할 수 있다.
참고로 송나라 장뢰(張耒)의 「죽부인전」은 죽제구를 의인하였다. 원나라 양유정(楊維楨)의 「죽부인전」 역시 죽제구를 의인화한 독특한 문학성을 나타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