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33년(중종 28)에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창건되었다. 그 밖에 자세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으며, 1972년에 담장을 신축하였고, 1989년에 외삼문을 복원하였다. 창건 후 원상의 변상이 많아 부속 건물에도 근대식 가공 흔적이 많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대성전, 정면 3칸, 측면 2칸의 명륜당, 동재(東齋) · 서재(西齋) · 내삼문(內三門) 등이 있다. 대성전에는 5성(五聖), 10철(十哲), 송조6현(宋朝六賢), 우리 나라 18현(十八賢)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건축형태는 터의 아래쪽에 명륜당과 교직사, 위쪽에 동재 · 서재를 둔 전학후묘(前學後墓)의 형태이다. 동재 · 서재는 정면 3칸, 측면 1칸인 민도리 맞배집이고, 대성전과 명륜당은 익공 끝에 연봉 장식이 되어있다. 창건 당시 대성전과 동무 · 서무가 갖추어진 큰 규모의 향교였다. 그러나 후대에 와서 강학의 기능이 축소되면서 명륜당의 규모가 작아졌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토지와 전적 · 노비 등을 지급받아 교관 1명이 정원 30명의 교생을 가르쳤으나, 조선 후기 이래 향교는 교육 기능이 쇠퇴하고 대신 선현에 대한 제향을 통한 교화 기능을 주로 담당하였다. 봄 · 가을에 석전(釋奠)을 봉행(奉行)하며 초하루 · 보름에 분향을 하고 있다.
1983년 경기도 문화재자료(현,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되었으며, 향교의 운영은 전교(典校) 1명과 장의(掌議) 수명이 담당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