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종 때 내사문하성(內史門下省)의 내사주서(內史注書)가 1061년(문종 15)에 중서문하성이 두어지면서 중서주서(中書注書)로 개정되었다. 정원은 1인이다.
중서주서는 1298년(충렬왕 24)에 도첨의주서(都僉議注書)로 바뀌고 품계도 정7품으로 승격되었다. 그 뒤 1356년(공민왕 5)에 문종대의 관제로 복구될 때 문하주서(門下注書)로 되었으며, 1362년에 첨의주서(僉議注書)로 되었다가 1369년에는 다시 문하주서로 개칭되었다.
현재 학계에서는 고려의 3성 6부제(三省六部制)에 대하여 논란이 있다. 고려의 3성 6부는 당(唐)의 제도를 그대로 수용하여 운영한 것이 아니라 중서성(中書省)과 문하성(門下省)을 합친 중서문하성이라는 단일기구와 상서성(尙書省)으로 구성되어 실제로는 2성 6부제로 운영되었다는 견해가 정설이다. 이에 따르면 중서주서는 중서문하성의 종7품 관직이 된다. 이에 대해 고려의 3성이 당제와 마찬가지로 중서성·문하성·상서성으로 이루어져 3성 6부제로 운영되었다는 견해도 제시되었는데, 이에 따르면 중서주서는 중서성의 종7품 관직이 되어 시각의 차이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