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5년(태종 5)에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창건되었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때 파손되고 나서 몇 번의 중수와 보수를 해왔다. 지금은 대성전 · 명륜당 · 동재 · 서재 · 흥학루가 남아 있으며, 1979년 대성전을 중건, 1981년 명륜당을 해체한 후 복원하였다. 1984년 동재(東齋)와 서재(西齋), 담장을 중수하였고 1986년 흥학루(興學樓)를 중건하였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대성전 등이 있으며, 5성(五聖), 송조6현(宋朝六賢), 우리나라 18현(十八賢)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다. 건축형태는 내삼문을 중심으로 앞쪽의 낮은 지대에 명륜당을 비롯해 동재와 서재가 서로 마주보고 있고, 뒤쪽 높은 지대에 대성전이 배치되어 있는 전학후묘(前學後廟)의 구조이다. 대성전은 정면 3칸 · 측면 2칸인 겹처마 맞배지붕 건물이고, 명륜당은 정면 3칸 · 측면 2칸인 홑처마 팔작지붕 건물로, 바닥은 대청마루이며 오른쪽 한 칸에 온돌방이 있다. 향교 입구에 있는 홍살문과 하마비를 보아 향교의 위상을 짐작할 수 있으며, 외삼문은 단층이 아닌 중층의 특이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아래층은 문, 위층은 누(樓)로 사용하였다. 외삼문에는 흥학루라는 현판이 걸려있고, 홍살문 옆에는 공적비 5기가 세워져 있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토지와 전적 · 노비 등을 지급받아 교관 1명이 정원 30명의 교생을 가르쳤으나, 조선 후기 이래 향교는 교육 기능이 쇠퇴하고 대신 선현에 대한 제향을 통한 교화 기능을 주로 담당하였다. 봄 · 가을에 석전(釋奠)을 봉행하며 초하루 · 보름에 분향을 하고 있다.
이 향교의 대성전은 1989년 대전광역시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었으며, 현재 향교의 운영은 전교(典校) 1명과 장의(掌議) 수명이 담당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