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풍기(豊基)이다. 자는 정백(井伯)이고, 호는 벽은(僻隱)이다. 아버지는 역관 진시영(秦時英)이며, 동생은 화원으로 활동한 진재기(秦再起)이다.
도화서 화원으로, 17세기 후반부터 18세기 전반까지 궁중에서 활약했다. 「숙종어제잠직도(肅宗御題蠶織圖)」[1697, 국립중앙박물관 소장]가 그의 가장 이른 작품으로 전한다.
1713년(숙종 39), 숙종의 어진 제작에 주관화사(主管畵師)로 참여해 공을 세웠다. 또한 1728년(영조 4)의 공신상 제작에도 참여한 사실이 『분무녹훈도감의궤(奮武錄勳都監儀軌)』에 남아 있다. 공신상 중 「박문수 초상(朴文秀 肖像)」이 진재해가 그린 것이며, 섬세하고 골기(骨氣) 있는 필선으로 완성된 조문명(趙文命)과 오명항(吳命恒,)의 초상도 그의 작품으로 추측된다.
조문명의 야복본(野服本) 초상인 「학암무송상(鶴巖撫松像)」[개인 소장], 경기도박물관 소장 「조영복 초상(趙榮福 肖像)」과 「유수 초상(柳綏 肖像)」 등은 개인적인 주문을 받고 제작한 것이다.
절파(浙派) 주1을 보이는 「월하취적도(月下吹笛圖)」[서울대학교박물관 소장]가 그의 산수화로 전칭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