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시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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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중앙시장
진주중앙시장
경제
지명
영남 남부지역을 상권으로 한 진주의 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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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영남 남부지역을 상권으로 한 진주의 시장.
내용

진주는 행정·군사 중심지이고, 전국에서도 토지가 가장 비옥한 농업지대이며, 지리산과 남해에 가까운 지리적 조건을 지녔기 때문에 각종 산물이 풍부하게 생산될 뿐만 아니라 여러 지방의 산물이 집중되었다.

기록상 조선시대에 장시가 처음으로 나타나기 시작한 15, 16세기에 이미 진주에서도 장시가 발생하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상품화폐경제가 더욱 발전한 조선 후기에 진주의 장시는 더욱 발달했다.

18세기 후반과 19세기 초반 진주부를 중심으로 한 장시는 주내장(州內場)을 비롯해 반성장(班城場)·엄정장(嚴亭場)·말문장(末文場)·마동장(馬洞場)·문암장(文巖場)·덕산장(德山場)·북창장(北倉場)·소촌장(召村場)·수곡장(水谷場)·안간장(安磵場)·창선장(昌善場) 등이 있었다.

이러한 장시들은 경제적 변화에 따라 신설되는 것도 있었지만 폐지되거나 혹은 이웃 장시로 흡수되거나 개시일을 조정해야 하는 것들도 있었다. 예를 들면 안간장은 40리 거리에 있는 의령의 주내장이 대시장으로 성장함에 따라 그에 흡수되었고, 수곡장은 진주 주내장의 영향으로 개시일을 바꿔 존속하였다.

또한, 엄정장 같은 경우에는 주내장·마동장·북창장 등 부내 3개장이 하나의 시장권을 형성함에 따라 개시일을 맞추기 위해 신설되었다. 그리고 말목장은 하동의 횡포장(橫浦場)과 마동장을 연결시키기 위해 진주와 하동의 경계지점에 설치됐다.

이러한 장시에서 거래된 상품은 쌀·콩·보리·밀·삼베·면포·모시·명주·생선·소금·종이·유기·철물·토기·옹기·벼루·소 등 다양하였다. 이곳을 중심으로 한 보부상들이 많았고, 이들은 주변의 군현은 물론 전국 각지의 장시까지 진출하였다. 또한, 장시는 물건과 사람들의 이동이 빈번하므로 덕산장의 경우 종종 반란의 계획지가 되었고, 1862년(철종 13) 임술란은 수곡장부터 시작되었다.

진주의 장시는 개항 이후 상품 자체와 그 유통망이 크게 변하였기 때문에 자연히 새로운 양상을 띠게 되었다. 즉, 부산항이 대일무역의 중심지가 되고, 마산포에 전운영(轉運營)이 설치되어 조세미가 집중되는 등 근방의 산물만 거래되던 진주장시가 도저히 경쟁할 수 없는 상업의 중심지가 생겼다.

따라서 진주장시가 누리던 미곡집산지와 면포·종이 등 수공업품생산지로서의 상업상 지위는 상대적으로 이들 지역에 비해 약화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경향은 일제강점기에도 지속되어 1920년대 중반 진주시장의 거래액은 부산·마산·밀양 등 교통이 편리하고 대일무역이 활발하던 지역의 시장에 비하여 적었고, 울산과 비슷한 정도였다.

또한, 주요 거래상품도 비료를 제외하고는 이전 시기와 비슷했고, 행상지역도 산청·하동·거창·함양·합천·사천·남해 등으로 크게 변하지는 않았으나, 서울과 멀리는 일본의 상인들도 올 정도로 상품유통권이 확대되었다. 특히, 정기시장이던 주내장은 공설시장으로 상설화되었다.

그 밖에 5일장인 수곡장·안간장·반성장·엄정장·단목장(丹牧場)·문산장(文山場)·지수장(智水場)이 있었으나, 공설시장에 비하면 거래액이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광복 이후에는 대안동의 중앙시장을 비롯, 천전(川前)·서부(西部) 공설시장, 청과물시장인 중앙도매시장·도동시장(道洞市場)이 개설되었다.

참고문헌

『임원경제지』
「18세기 말∼19세기 초의 장시발달에 대한 기초연구」(한상권, 『한국사론』 7, 서울대학교 국사학과, 1981)
「일제하의 진주의 산업경제」(노윤환, 『진주문화』 3, 진주교육대학부설 진주문화권연구소, 19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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