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 당시 한강방어선이 붕괴된 후, 국군과 유엔군이 금강과 소백산맥 일대에 새로운 저지선을 형성하려고 할 때, 국군 수도사단과 제2사단, 그리고 독립 제17연대가 청주 북방의 진천지역에서 전차와 포병으로 증강된 북괴군 제2사단의 남침을 지연시킨 방어전투이다.
전투기간은 1950년 7월 6일부터 10일까지이다. 이 전투에서 국군 수도사단은 전투가 개시되기 직전에 진천 북쪽의 중산리를 점령하여 진천을 확보했으나 북한군의 전차에 밀려 진천을 상실했다. 군단에서 증원된 제2사단 제16연대와 제20연대 그리고 독립 제17연대를 통합하여 진천 남쪽의 봉화산과 문안산 일대에 저지 진지를 급편하고, 5일 동안 방어전을 전개하였다.
이 방어기간중 저지 진지가 돌파되기도 하고 다시 회복되기도 하는 등, 격렬한 공방전이 벌어짐으로써 쌍방간에 상당한 피해를 입었다. 이때 북한군은 국군을 경시하고 저돌적으로 공격을 감행하다가 더 많은 피해를 입었다. 그러나 국군은 이 무렵 전투력을 완전히 회복하지 못한데다가 진천 좌우측방의 공백지대로 남하한 북한군에게 배후를 위협받게 되자 결전을 회피하고 청주지역으로 철수하였다.
이 전투로 북한군 제2사단은 대전지역으로 직행하려던 당초의 계획이 5일간이나 지연되어 작전상 차질을 빚게 되었으며, 국군은 소백산맥에 연한 방어선을 쌓을 수 있는 시간적인 여유를 얻게 되었다. 1961년 6월 25일 이 전투의 격전지였던 충북 진천의 잣고개에 진천지구전투에서 북한군을 격퇴시키다 산화한 호국용사의 넋을 위로하기 위한 기념비가 세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