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날이 세 갈래로 갈라진 창의 일종이다. 조선시대 무예 24기중의 하나로 길이 7자 6치, 무게 5근의 끝이 세 갈래로 갈라진 당파(鐺鈀)을 가지고 싸우는 무예이다. 자세는 조천세(朝天勢) ·중평세(中平勢) ·진보세(進步勢) ·복호세(伏虎勢) ·기룡세(騎龍勢) ·나창세(拿槍勢) ·가창세(架槍勢) 등이 있다.
삼국시대부터 창날이 산(山)자형으로 된 삼지창이 많다. 가지창은 끝 부분에 부착된 여러 개의 예리한 창날로 적을 찌르기 때문에 살상 효과가 클 뿐 아니라 창날이 넓게 퍼져 있기 때문에 적의 공격을 방어하기 쉽다. 또한 기병과 싸울 때에는 가지로 상대방을 걸어 넘어뜨릴 수도 있었다.
이러한 창은 물고기를 잡는 작살에서 유래하였다는 설이 있는데, 수확한 곡물 다발을 정리하거나 탈곡할 때 사용하는 농기구와 형태가 비슷한 것으로 미루어, 도끼나 낫과 같이 농기구가 유사시에 무기로 전환된 것이라 볼 수도 있다. 고대 고구려 영토였던 중국 집안현 뿐만 아니라 백제, 신라, 가야의 영토였던 지역에서도 유물이 출토되고 있는 것으로 미루어 삼국시대에 무기로 활용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중국의 경우는 당나라 때 군대에서 사용하기 시작하였고, 가장 많이 사용한 것은 명나라 이후라 한다. 명나라의 척계광은 왜구의 장도를 무력화시키기 위해 당파를 고안하여 활용하였다.
조선시대에 들어와 임진왜란때 조선군은 일본군의 창술에 밀려 고전을 면하기 어려웠다. 전쟁이 끝난 후 조선은 적과의 접근전에서 창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었다. 따라서 실전에서 위력을 보였던 명나라의 낭선낭선(狼筅), 기창旗槍기창(旗槍), 장창장창(長槍), 당파당파(鐺鈀), 죽창죽창(竹槍) 등을 도입되어 조선의 실정에 맞도록 개량했고, 병사들의 창술 훈련도 체계화하여 무기체계에 변화를 꾀하였다. 이는 정조 때에 무예도보통지『무예도보통지武藝圖譜通志』의 발간으로 완성되었다.
조선시대의 당파 유물은 세 개의 창날의 뿌리 부분에 주석으로 용수(龍首)를 떼어 붙였다 할 수 있게 되어 있다. 길이는 7척 6촌, 무게는 5근, 자루와 끝 파(鈀)를 합한 입 뿌리 부분이 1촌인데, 끝으로 가면서 점점 가늘어진다. 가운데의 정봉과 가로 놓여진 옆가지가 합해져서 한 자루가 된다. 세 창날 끝이 가지런하면 깊이 찌를 수 없기 때문에 가운데 날을 두 옆 날보다 1촌이 긴 2촌으로 하였다. 당파의 종류로는 철파와 목파의 두 종류가 있다.
기예로서의 당파는 보병 대 보병, 보병 대 기병으로 대적할 수 있도록 편성되어 있고 찌르고 잡아채는 데 우수한 병기로서 널리 쓰였다. 삼지창으로 더 많이 알려진 당파는 창을 막기에 좋은 무기이며, 명나라의 척계광이 왜구의 장도를 무력화시키기 위해 고안한 대표적인 무기이다. 가운데 창에 작은 포를 달아 사용하기도 하였으며 기룡, 나창, 가창과 같은 자세는 평지에서 창을 든 상대와 대적하는 자세이자 동시에 기병을 제압하는 기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