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창자루 끝에 낫을 달아서 적을 끌어당겨 베는 장병기.
개설
연원 및 변천
조선시대에는 세종때에 반월형 형태의 구겸창 한 점이 모(矛)라는 이름으로 소개되고 있으며, 성종때에도 여진정벌 부대의 단병접전 무기로 낫(鎌)을 준비한 기록이 있는데, 이 낫도 겸창으로 판단된다.
이후 임진왜란때 일본군을 따라 종군신부로 참여한 스페인 신부가 기록한 문헌에는 조선군이 해전에서 긴 자루가 달리 갈고리를 교묘히 이용하여 왜군을 공격했다. 신부는 그 무기를 장병겸(長柄鎌)이라고 했는데 이 역시 겸창으로 볼 수 있다.
이후 1625년(인조 3년)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에도 남한산성에 비치될 군기로 겸창이 언급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지속적으로 사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구조 및 형태
으로써 배 아래쪽에 비스듬히 묶어 놓아 헤엄쳐서 접근하는 적을 막는 무기라고 하였다.
사용 방법 및 특징
참고문헌
- 『조선왕조실록』
- 『승정원일기』
- 『충무공전서』
- 『한국무기발달사』(김기웅 외, 국방군사연구소, 1994)
- 『조선의 무기와 갑옷』(민승기, 가람, 2004)
- 『우리나라의 전통무기』(박재광 외, 전쟁기념관, 2004)
- 『나라를 지켜낸 우리 무기와 무예』(국사편찬위원회 편, 경인문화사,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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