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시대에 고구려에서 많이 사용된 병기로, 고구려는 갈고리 형태의 구창을 주로 사용하였으나 신라와 가야는 창날의 좌우로 예리한 가시가 있는 유자창(有刺槍)을 주로 사용했다.
이후 여몽연합군이 일본을 공격했을 때 일본측의 기록화에는 요구창을 들고 있는 여몽연합군의 병사가 그려져 있는 것으로 보아 계속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에는 『무예제보번역속집(武藝諸譜飜譯續集)』에 소개되어 있는데, 이는 임진왜란을 전후한 시기에 새로이 명나라에서 도입된 것이다. 그 형태나 용도는 신라의 유자창과 거의 동일하지만 도입 경로는 달랐다. 이후 구창은 『연병실기』에서 기병이 사용하는 무기로 소개되고 있다.
한편 『역어유해보(譯語類解補)』에는 중국의 구창은 곧 우리나라의 요구창(腰鉤槍)이라고 했는데, 이 요구창은 하나의 창자루 끝에 3개의 갈고리가 달려 있는 것으로서, 창날 허리에 갈고리가 달려있는 요구창과는 다르고, 『무예제보번역속집』의 구창과도 다르다. 『기효신서』에는 요구창을 그려놓고 수전에서 사용하는 무기라고 소개하고 있다. 조선시대의 기록에 요구(撩鉤), 요구금(腰鉤金)이라고 되어 있는 것도 창날이 없는 단순 갈고리를 의미라는 것으로 보인다.
삼국시대의 구창은 갈고리 형태 내지는 창날의 좌우로 예리한 가시가 있는 형태이나 조선시대에는 창날의 좌우에 3개의 갈고리가 달려 있으며, 길이는 8척 5촌이었다. 한편 『훈국신조기계도설』에 있는 요구창은 국왕의 어가를 호위하는 협련군들이 사용했던 갈고리창으로 길이는 2.5m 내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