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나무 가지에 세모꼴의 날카로운 쇠를 달아 사용한 창으로 낭선창(狼筅槍)이라고도 하며 주로 대나무 또는 쇠로 만드는데 길이는 15자, 무게는 7근, 9~11층의 가지가 달렸고 날카로운 날이 달려 있다. 길이 1장 5척, 쇠나 대나무로 만들며 9 내지 11층의 가지가 붙어 있고, 그 가지에 다시 복잡한 가지가 달렸고, 줄기의 맨 끝에 날이 달려 있는 무기를 지칭하며, 이것을 이용한 무예가 『무예도보통지』에 낭선으로 규정되었다.
가지를 그대로 남겨둔 대나무를 손잡이로 사용하는 병기로 중국에서 명나라 때 발명되었다. 최초로 사용한 사람은 1444년 반란을 일으킨 엽종류(葉宗留)의 병사들이었다. 낭선을 군대의 정식 무기로 정한 사람은 명나라 장수 척계광(戚繼光)이다. 그는 당시 중국의 연안을 습격해온 왜구들과의 싸움에서 명나라 병사들이 사용하는 창이 일본도에 의해 쉽게 잘라지자 손잡이가 잘 잘라지지 않는 낭선을 든 병사를 부대 맨 앞에 배치함으로써 큰 성과를 올렸다. 이후 널리 사용하게 되어 1619년 후금과의 싸움에서도 사용하였다.
우리나라는 조선 중기 이후에 사용하였다. 임진왜란때 조선군은 일본군의 창술에 밀려 고전을 면하기 어려웠다. 전쟁이 끝난 후 조선은 적과의 접근전에서 창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었다. 따라서 실전에서 위력을 보였던 명나라의 낭선낭선(狼筅), 기창旗槍기창(旗槍), 장창장창(長槍), 당파당파(鐺鈀), 죽창죽창(竹槍) 등을 도입되어 조선의 실정에 맞도록 개량했고, 병사들의 창술 훈련도 체계화하여 무기체계에 변화를 꾀하였다. 이는 정조 때에 무예도보통지『무예도보통지(武藝圖譜通志)』의 발간으로 완성되었다.
낭선의 길이는 1장 5척, 무게 7근이며, 재질은 대나무와 철로 만든 두 종류가 있다. 끝 부분에는 적을 찌르기 위해 철로 된 예리한 날을 부착하였다. 대나무 손잡이 부분은 가지를 그대로 남겨 두는데, 남아 있는 가지 수는 9〜11개가 적당하다. 낭선대의 뒷부분은 조금 무거우므로 중간부분을 잡으면 앞뒤가 서로 균형을 이룬다.
『등단필구(登壇必究)』 에서는 “낭선은 마디마다 줄기가 난 모죽(毛竹)을 재료로 하는데, 길고 많은 왕대의 끝을 예리하게 만들고 철을 씌운 것으로 작은 창과 같다. 양쪽 겉에 많은 긴 가시를 두고 매 쌍마다 하나는 곧게 하고, 하나는 거꾸로 만든다. 그런 다음에 잘 익은 오동나무 기름에 적시고 독약을 창날에 발라서 창끝에 가까이 달려들기가 어렵게 하였다.” 라고 설명하고 있다.
낭선의 가장 큰 특징은 방어 효과가 높다는 데 있다. 이 효과는 자르지 않고 그대로 남겨둔 대나무 가지에 의한 것이며, 남아 있는 가지로 인해 손잡이도 그다지 쉽게 잘라지지 않는다. 또한 대나무 가지가 적의 공격을 방해하고 충격을 완화하는 역할도 한다. 총탄을 막아낼 수는 없지만 화살은 상당히 많이 막아낼 수 있다. 낭선의 단점은 길고 무거우며 부피가 커서 휴대하기가 불편하고, 이동할 대는 방해가 된다는 점이다. 따라서 힘세고 훈련받은 사람 이외에는 사용할 수가 없었다.
기예로서의 낭선은 척계광이 변방 방어를 목적으로 창안한 무예인만큼 전투적 실용성이 큰 무예이고 무거운 무기여서 힘센 사람을 골라 이 무기를 사용하게 했다. 자세 동작이 중후하고 위력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