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상찬

  • 문학
  • 인물
일제강점기의, 문화운동가이자 천도교인, 언론인, 작가.
이칭
  • 필명계산인(桂山人), 고고생(考古生), 관상자(觀相者), 문내한(門內漢), 사외사인(史外史人), 삼각산인(三角山人), 성동학인(城東學人), 수춘산인(壽春山人), 차천자(車賤者), 첨구생(尖口生)
인물/근현대 인물
  • 대표 상훈은관문화훈장(2010)
  • 사망 연도1946년
  • 성별남성
  • 주요 경력『개벽』, 『별건곤(別乾坤)』, 『신여성(新女性)』, 『농민(農民)』, 『학생(學生)』 등 잡지의 주간 또는 기자
  • 주요 저서조선4천년비사(朝鮮四千年秘史), 해동염사(海東艶史), 조선사외사(朝鮮史外史), 한국야담사화전집(韓國野談史話全集)
  • 출생 연도1887년(고종 24)
  • 출생지강원도 춘천
집필 및 수정
  • 집필 2023년
  • 엄태웅 (고려대학교)
  • 최종수정 2024년 11월 06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내용 요약

차상찬은 일제강점기의 문화운동가이자 천도교인, 언론인, 작가이다. 다수의 야담 및 사화를 창작한 작가이며, 한시를 창작한 시인이고, 일상의 이야기를 담은 수필가이다. 또한 『개벽』을 비롯하여 『별건곤(別乾坤)』·『신여성(新女性)』·『농민(農民)』·『학생(學生)』 등의 주간 혹은 기자를 지냈다. 천도교인이기도 하다. 이러한 다양한 활동은 그가 특정 분야의 전문가를 넘어 문화운동가였음을 보여 준다.

정의

일제강점기의, 문화운동가이자 천도교인, 언론인, 작가.

인적사항

차상찬(1887~1946)은 강원도 춘성군 신동면 송암리에서 성장하였다. 한학에 조예가 깊은 가문에서 어려서부터 한학을 공부하였으며, 1906년 서울로 유학을 떠나 보성중학교와 보성전문학교에서 근대 교육을 받았다. 보성전문학교에서 교편을 잡기도 하였다. 1946년 3월 24일 사망하였으며, 춘천시 송암동에 안장되었다.

주요 활동

차상찬은 1904년 두 형과 함께 천도교에 입교하여 천도교의 민족운동과 문화운동에 깊이 관여하였다. 1911년 천도교회월보 학술부 기사를 담당하면서 잡지계에 몸담기 시작한 이후, 개벽사 잡지 창간과 발행에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하였다. 개벽사의 대표 잡지 『개벽』은 창간과 강제 폐간, 속간과 폐간 그리고 복간을 거듭하였는데, 차상찬은 그 영욕의 시간을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한 유일한 인물이다.

또한 차상찬은 식민지 당국의 언론 탄압에 적극적으로 저항한 대표적인 언론인이다. 그는 1924년 23개 단체가 모인 ‘언론집회압박탄핵대회’에서 실행위원으로 선출되고, 1925년 4월 15일부터 사흘 동안 열린 ‘전조선 기자 대회’에서 서기를 맡아, 언론 자유를 위한 5개 항의 결의문 채택을 주도하였으며, 1931년 3월에는 개벽사 대표로서 주요 잡지사 대표들과 함께 총독부 당국에 검열 규정 시정을 강력히 요청하는 등 언론 자유를 위해 헌신하였다. 경성지방법원 검사국 문서에 차상찬과 관련한 ‘불허가 압수 및 삭제 출판물 목록과 기사’ 사건이 총 100건에 이른다는 사실은 그가 언론인으로서 견뎌온 지난한 시간을 증명해 준다.

학문과 저술 · 사상과 작품

차상찬은 『개벽』 등 당시 신문 · 잡지의 주요 필자로서 수십 개의 필명으로 수백 편의 글을 발표하였다. 글의 내용은 역사, 문학, 사상, 민속, 문화 등 지평이 넓고, 종류도 한시, 소설, 수필, 동화, 역사서사, 야담, 보고서, 논설, 논문 등 다양하고, 문체도 한문체, 국한문혼용체, 한글체 등 다채롭다.

차상찬의 시인 및 수필가로서의 면모는 주로 『개벽(開闢)』을 비롯한 몇몇 잡지에 발표된 그의 한시(漢詩)와 수필 작품에서 볼 수 있다. 저술로 『조선4천년비사(朝鮮四千年秘史)』 · 『해동염사(海東艶史)』(한성도서주식회사, 1931) · 『조선사외사(朝鮮史外史)』(명성사, 1947) · 『한국야담사화전집(韓國野談史話全集)』 제4권(서정출판사, 1971) 등이 있다다.

또한 『개벽』을 비롯하여 『별건곤(別乾坤)』 · 『신여성(新女性)』 · 『농민(農民)』 · 『학생(學生)』 등 잡지의 주간 또는 기자로서 활약하였다. 이와 같이 차상찬은 근대 잡지의 선구자, 저항 언론인, 민족주의 문화운동가, 문필가 등 다양한 면을 지닌 인물이며, 언론, 종교, 문화, 역사, 문학 분야에서 주목할 만한 업적을 남겼다.

상훈과 추모

2010년 11월 1일 대한민국 정부는 '제45회 잡지의 날' 기념식에서 차상찬에게 은관문화훈장을 추서했다.

참고문헌

  • 원전

  • - 차상찬 저, 차상찬전집편찬위원회, 김양선, 김태웅, 노성호, 박용규, 손건일, 정현숙, 허준구, 엄태웅 편, 『차상찬전집』 1~3 (춘천문화원 춘천학연구소, 2018)

  • - 차상찬 저, 차상찬전집편찬위원회, 김양선, 김태웅, 노성호, 박용규, 손건일, 정현숙, 허준구, 엄태웅 편, 『차상찬전집』 4~7 (춘천문화원 춘천학연구소, 2022)

  • 단행본

  • - 김태웅, 박길수, 성주현, 송민호, 심경호, 야나가와 요스케, 오현숙, 유명희, 정진석, 정현숙 지음, 강원문화교육연구소 편, 『차상찬 연구—일제강점기 문화운동의 선구자—』 (모시는 사람들, 2020)

  • 논문

  • - 김정숙, 「잡지인 차상찬 연구」 (『한국출판학연구』 45-4, 한국출판학회, 2019)

  • - 김태웅, 「차상찬의 지방사정조사와 조선문화인식」 (『역사교육』 148, 역사교육연구회, 2018)

  • - 류정월, 「『어린이』 소재 차상찬 역사동화 연구」 (『리터러시 연구』 11-1, 한국 리터러시 학회, 2020)

  • - 박종수, 「차상찬론」 (『한국민속학』 28-1, 한국민속학회, 1996)

  • - 성주현, 「청오 차상찬의 천도교 활동에 대한 고찰」 (『한국민족운동사연구』 99, 한국민족운동사학회, 2019)

  • - 엄태웅, 「차상찬의 『통속조선사천년비사(通俗朝鮮四千年祕史)』 편찬의식 고찰」 (『고전과 해석』 35, 고전문학한문학연구학회, 2021)

  • - 엄태웅, 「차상찬의 『해동염사』 고찰」 (『Journal of Korean Culture (JKC)』 59, 고려대학교 한국언어문화학술확산연구소, 2022)

  • - 유명희, 「차상찬의 민요 수집과 유형 연구」 (『한국민요학』 54, 한국민요학회, 2018)

  • - 윤세민, 「일제 강점기 대표 잡지인 차상찬 연구」 (『한국출판학연구』 46-5, 한국출판학회, 2020)

  • - 이민규, 「『개벽』, 『별건곤』의 민요 수록 양상을 통해 본 차상찬의 문학관 및 민요의식」 (『실천민속학연구』 41, 실천민속학회, 2023)

  • - 정현숙, 「차상찬 연구 1—기초 조사와 학술적 연구를 위한 제언—」 (『근대서지』 16, 근대서지학회, 2017)

  • - 정현숙, 「차상찬 연구 2—필명 확인(1)—」 (『근대서지』 17, 근대서지학회, 2018)

  • - 정현숙, 「차상찬 연구 3—필명 확인(2)—」 (『근대서지』 20, 근대서지학회, 2019)

  • - 정현숙, 「차상찬의 이동과 연대의 시간」 (『구보학보』 24, 구보학회, 2020)

  • - 조형열, 「천도교인 차상찬의 역사인식」 (『민족문화연구』 98,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2023)

  • - 최배은, 「차상찬의 ‘어린이 역사 이야기’ 연구」 (『아동청소년문학연구』 27, 한국아동청소년문학학회, 2020)

주석

  • 주1

    : 현재 춘천시 송암동.

  • 주2

    : 죽은 뒤에 관등을 올리거나 훈장 따위를 주다. 우리나라의 경우 긴급 상황에서 살신성인의 정신을 실천하다가 사망하거나 위급한 상황에서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하여 자신을 희생하여 사회 전체의 본받을 만한 모범이 된 사람, 생전에 큰 공을 세워 국민의 존경을 받으며 덕망을 갖춘 사람에게 준다. 우리말샘

  • 주3

    : 죽은 뒤에 관등을 올리거나 훈장 따위를 주다. 우리나라의 경우 긴급 상황에서 살신성인의 정신을 실천하다가 사망하거나 위급한 상황에서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하여 자신을 희생하여 사회 전체의 본받을 만한 모범이 된 사람, 생전에 큰 공을 세워 국민의 존경을 받으며 덕망을 갖춘 사람에게 준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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