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녕향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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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녕 창녕향교 전경
창녕 창녕향교 전경
유적
문화재
경상남도 창녕군 창녕읍에 있는 조선건국초기에 설립되고 조선후기 제17대 효종 당시 중건된 향교. 교육시설. 시도유형문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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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경상남도 창녕군 창녕읍에 있는 조선건국초기에 설립되고 조선후기 제17대 효종 당시 중건된 향교. 교육시설. 시도유형문화재.
내용

정확한 창건연대는 알 수 없으나, 조선왕조실록 태종 12년의 기록에 언급된 것으로 보아 조선건국 초기에 설립된 것으로 추정되며, 효종연간에 중건되었고, 1913년 화재로 소실되었다가 이듬해 대성전과 동무(東廡)·서무(西廡)를 중건하였으며, 1926년 풍화루(風化樓)와 1959년 명륜당을 중수하였다.

1960년 화재로 풍화루가 소실되었다가 곧 재건하였고, 1972년 전사청을 옮겨 지었다. 1976년 내삼문을 재건하고 1980년 동재(東齋)·서재(西齋)를 복원하였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5칸의 대성전, 각 3칸의 동무와 서무, 명륜당, 동재와 서재, 내삼문(內三門), 풍화루 등이 있다.

대성전에는 5성(五聖)의 위패가, 동무·서무에는 송조4현(宋朝四賢), 우리 나라 18현(十八賢)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건축형태는 앞에 명륜당이 있고 뒤에 대성전이 있는 전학후묘(前學後廟)의 배치이다. 대성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이고, 공자의 위패를 모셨고, 가을에 제(祭)를 지낸다. 명륜당은 정면 5칸, 측면 2칸의 홑처마 팔작지붕 건물로 주춧돌이 원주식으로 되어 있다. 외삼문은 높은 석축 기단 위에 있는데 석축에 연꽃무늬가 양각된 사찰 기단 면석이 혼용되어 쌓여 있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토지와 전적·노비 등을 지급받아 교관 1명이 정원 30명의 교생을 가르쳤으나, 조선 후기 이래 향교는 교육 기능이 쇠퇴하고 대신 선현에 대한 제향을 통한 교화 기능을 주로 담당하였다. 봄·가을에 석전(釋奠)을 봉행하며 초하루와 보름에 분향을 하고 있다.

1983년 경상남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으며, 소장전적 가운데 《창녕향교직원임록 昌寧鄕校直員任錄》·《창녕유림노유안 昌寧儒林老儒案》·《창녕유안 昌寧儒案》·《노비안 奴婢案》·《교임안 校任案》·《향교수미교구절목 鄕校需米撟捄節目》 등은 이 지방의 향토사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다. 현재 향교의 운영은 전교(典校) 1명과 장의(掌議) 수명이 담당하고 있다.

참고문헌

『문화유적총람』(문화재관리국, 1977)
『교지집록』(창녕군, 1986)
집필자
김호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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