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원민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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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사
사건
1862년(고종 13) 11월 경상도 창원에서 일어난 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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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1862년(고종 13) 11월 경상도 창원에서 일어난 민란.
내용

11월의 환작전(還作錢)이 과다한 것이 난의 원인이 되었다. 그해 7월에 김석주(金石柱) 등이 환폐 바로잡는 데 대한 방안의 소를 올렸는데 교구되지 않은 일이 있었다.

난은 11월 8일 동면(東面) 금산(琴山)에 사는 김대종(金大宗)이 각 이(里)에 통문(通文)을 내어 사람들을 모으고 몽둥이를 들고 읍에 들어가 작경(作梗 : 도리에 맞지 않은 일)하려 하다 교졸(校卒)에게 제지당하자 해산하였다.

14일에는 서면 감천(甘泉)의 김동길(金東吉), 중리(中里)의 정의지(鄭義之)가 다시 무리를 모아 각 이를 돌면서 징벌, 위협하며 집을 불지르고 다녔는데 하룻밤 사이에 무리가 수백명이나 되었다.

17일에 더 많은 사람들이 모여 그 세력이 더욱 커졌다. 이들은 면임(面任)을 지낸 자의 집과 좌수의 집을 우선 방화하고, 18일에는 서면의 무리들이 모여들어 남산을 방화하고 성중에 들어가 관리들의 집을 불지르고, 다시 성 밖으로 나와 향임(鄕任)을 지낸 자의 집을 방화하는 등 그 행동이 아주 강경하였다.

참고문헌

『비변사등록(備邊司謄錄)』
『임술록(壬戌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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