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동 금강저

  • 예술·체육
  • 작품
고려시대의 청동유물.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임영주 (한국문화재보호협회, 미술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청동금강저 미디어 정보

청동금강저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고려시대의 청동유물.

내용

길이 22㎝, 너비 6㎝.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금강저는 범어로 ‘Vajra’인데, 경전(經典)에 “이 보배는 빛깔이 자영(紫英)과 같고 금을 녹여 수없이 단련(鍛鍊)하여 만들었다고 한다. 가장 단단하고 날카로워서 옥(玉)을 자른다. 세상에 매우 드물게 있는 까닭에 보배라 이름한다.”라고 하였다.

또한 『지도론(智度論)』에 따르면, “마니주(摩尼珠)는 제석천(帝釋天)이 지녔던 금강의 파편이다. 이 금강은 아수라와 싸울 때 부서져 염부제(閻浮提)에 떨어진 것”이다.

고대 인도에서부터 무기로 사용된 금강저는 집금강신(執金剛神)·금강역사(金剛力士)·금강수보살·대일여래로 바뀜을 볼 수 있다. 밀교(密敎)에서는 불지(佛智)와 견고(堅固)와 번뇌를 끊는다는 두 가지 의미의 상징으로 해석되어 제존(諸尊)의 지물(持物)로, 또한 수법(修法)의 중요한 법구(法具)로 승려들이 사용하던 도구이다.

이 금강저는 손잡이 부분 중앙이 구형(球形)으로 표면에 윤(輪)을 새기고 있는 일반적인 형상인 귀목(鬼目) 또는 귀면형(鬼面形)으로 되어 있지 않고, 구형의 표면에 얕은 선으로 화판(花瓣) 모양이 오목새김되어 있는 점이 특이하다. 중앙 부분과 고(鈷) 사이에는 가운데를 가늘게 하여 양쪽으로 각 6엽씩의 연판(蓮瓣)이 장식되어 있다.

가운데 가는 부분에는 다시 중앙에 약간 도톰한 선을 돌리고, 양쪽에는 승목형(繩目形)에 가깝게 홈을 파서 돌리고 있다. 고 부분은 봉선(鋒先)이 시면(匙面)으로 처리되어 있으며, 표면에 얕은 홈이 패어 있을 뿐 다른 조식(彫飾)은 되어 있지 않다. 표면상태는 산화가 심하여 양호하지 못하나 간간이 금색이 남아 있고, 문양도 식별할 수 있을 정도이다.

이 밖에 현존하는 유물은 길이가 대개 22㎝ 내외인데 통일신라 말기에서 고려시대 초기의 것으로 추정된다. 금강저는 고의 수에 따라 1∼5고가 있고 특별한 예로는 9고가 있으나 보통 독고저(獨鈷杵)·삼고저·오고저가 많다. 또, 양단(兩端)이 무기처럼 뾰족한 것이 아니라 보주형(寶珠形)이나 탑 모양이 있어서 보주저·탑저라 불리는데, 일반적으로는 삼고저를 금강저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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