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81년(선조 14)에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창건되었다. 1592년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1602년 백운동에 재건하였다. 1654년 현 위치로 이건하였고, 1777년,1848년,1966년에 거쳐 중수하였다. 1979년 대성전 · 내삼문 · 명륜당을 해체 보수하고 전면의 담장 일부를 지었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맞배지붕의 대성전과 명륜당 등이 있으며, 대성전에는 5성(五聖), 송조4현(宋朝四賢), 우리 나라 18현(十八賢)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건축형태는 외삼문을 통과하면 강당인 명륜당이 전면에 놓이고 사당인 대성전이 뒤편에 놓이는 전학후묘(前學後廟)의 배치 구조이다. 명륜당은 팔작지붕인 목조단층집이며 정면 5칸, 측면 2칸인 건물로 조성되었다. 가운데 세 칸에 문을 달고 양쪽에 한 칸씩은 벽체로 마감되어 있어 다소 폐쇄적인 구성을 지니고 있는 편이다. 대성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 단층 목조기와 건물이고, 전면에 짧게 툇간이 마련되었다. 대성전의 기단은 향교 주변의 절터에서 나온 탑부재로 추정된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토지와 전적 · 노비 등을 지급받아 교관 1명이 정원 30명의 교생을 가르쳤으나,조선 후기 이래 향교는 교육 기능이 쇠퇴하고 대신 선현에 대한 제향을 통한 교화 기능을 주로 담당하였다. 봄 · 가을에 석전(釋奠)을 봉행하며 초하루 · 보름에 분향을 하고 있다. 이 향교는 1981년 충청북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고 소장전적은 모두 산실되어 거의 없는 상태이다. 현재 향교의 운영은 전교(典校) 1명과 장의(掌議) 수 명이 담당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