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에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창건되었다. 창건시기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없으나 사마소(司馬所)가 1703년(숙종 29)에 건립된 것으로 보아 향교의 창건시기는 그 이전일 것으로 생각된다. 여러 차례 중수와 보수를 하여 1979∼1981년에 해체 복원되었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대성전 · 명륜당 · 삼문(三門) 등이 있으며, 대성전에는 5성(五聖), 송조4현(宋朝四賢), 우리 나라 18현(十八賢)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건축형태는 명륜당이 앞에 있고 대성전이 뒤에 있는 전학후묘(前學後廟)의 형태이다. 대성전은 맞배지붕의 정면 3칸, 측면 2칸인 목조기와집이다. 명륜당은 팔작지붕의 정면 5칸, 측면 3칸인 목조기와집으로 1733년에 써진 편액이 걸려있다. 입구에는 홍살문과 하마비가와 고직사(庫直舍), 담장이 둘러진 외삼문이 있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토지와 전적 · 노비 등을 지급받아 교관 1명이 정원 30명의 교생을 가르쳤으나, 조선 후기 이래 향교는 교육 기능이 쇠퇴하고 대신 선현에 대한 제향을 통한 교화 기능을 주로 담당하였다. 봄 · 가을에 석전(釋奠)을 봉행하며 초하루 · 보름에 분향을 하고 있다.
이 향교는 1977년 충청북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으며, 소장전적은 판본 11종 17책이 있다. 현재 향교의 운영은 전교(典校) 1명과 장의(掌議) 수명이 담당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