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번 20759. 충청북도 청주에서 출생. 6·25전쟁 당시 제8사단 제10연대 제2대대 제3중대 2소대의 소대장으로 참전하여 1952년 9월 22일 강원도 인제군 서화면 705고지 전투에서 전사하였다. 최병익 소위는 한영상업학교를 졸업하고 1952년 5월 4일 소위로 임관하여 이 부대에 첫 부임했다.
당시 지리산 공비토벌작전에서 혁혁한 전공을 세우고 강원도 인제군으로 이동한 제8사단은 미 제10군단에 편입되어 미 제1해병사단이 담당하던 미네소타선(591고지-878고지-854고지-812고지-924고지)을 인수하여 동부전선의 좌익(左翼)의 방어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그곳은 아군의 주요 보급로를 엄호하는 중요한 지역으로서 적의 강력한 공세가 예상되는 지역이었다.
1952년 9월 21일 오후 9시경 북한군은 3시간에 걸쳐 집중포격을 계속해대더니, 마침내 1개 대대 규모의 병력으로 812고지를 공격하기 시작하였다. 10시 40분경에는 1개 연대 규모의 병력으로 854고지에 대한 공격을 개시하였다.
이와 함께 1㎞ 떨어진 있던 제3중대가 방어하고 있던 705고지에 대해서도 2개 중대의 병력으로 공격해 왔다. 북한군은 직사포 4문과 82㎜ 박격포 3문이 화력 지원하는 가운데 제3중대의 정면의 급경사를 피하여 3소대가 방어하고 있는 계곡으로 공격을 가해 왔다.
이에 3소대장 최소위는 소대원들과 함께 용전분투했으나 북한군의 파상공격(波狀攻擊)으로 인해 2분대 진지까지 돌파당하자, 직접 3명의 분대 요원을 데리고 2분대 진지로 달려가 소대원을 독려하며 싸웠다. 그러나 최병익 소위는 모든 분대원과 함께 몰려 오는 북한군의 공격을 막아내며 분투하고 있는 중에, 진지 우측방에서 적이 들이닥치는 것을 보고 막기 위해 뛰어가는 순간, 적이 던진 수류탄이 폭발하여 그 파편을 맞고 쓰러져 전사하였다.
소대장의 죽음을 맞은 소대원은 분투하여 진지를 재탈환하고 3시간여 동안의 북한군의 공격을 끝내 막아내었다. 1952년 11월 15일 그에게 충무무공훈장(忠武武功勳章)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