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북 ()

석림모옥도(최북 작)
석림모옥도(최북 작)
회화
인물
조선 후기, 「공산무인도」, 「풍설야귀인도」 등을 그린 최초의 여항 직업 화가.
이칭
성기(聖器), 유용(有用), 칠칠(七七)
월성(月城), 성재(星齋), 기암(箕庵), 거기재(居基齋), 삼기재(三奇齋), 호생관(毫生館)
초명
식(埴)
별명
최산수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712년(숙종 38)
사망 연도
미상
본관
무주(茂朱)
주요 작품
표훈사도, 사시팔경도, 호취응토도, 매화쌍치도, 공산무인도, 풍설야귀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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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

최북은 조선 후기 「공산무인도」, 「풍설야귀인도」 등을 그린 최초의 여항 직업 화가이다. 문인과 교유할 정도로 시서화에 능했으며, 안산 문인들의 후원 아래 중국 화보를 임모하거나 강세황 등과 교유하며 자신만의 남종화법을 완성했다.

정의
조선 후기, 「공산무인도」, 「풍설야귀인도」 등을 그린 최초의 여항 직업 화가.
가계 및 인적사항

본관은 무주(茂朱)이다. 초명은 최식(崔埴)이며, 자는 성기(聖器) · 유용(有用) · 칠칠(七七), 호는 월성(月城) · 성재(星齋) · 기암(箕庵) · 거기재(居基齋) · 삼기재(三奇齋) · 호생관(毫生館)이다. 지배층을 상대로 그림을 팔아 생활한다는 의미의 ‘호생관’이란 호를 사용할 정도로 타인을 의식하지 않았다.

주요 활동

사의적 남종화풍의 산수화는 물론 진경산수화 · 화조화 · 영모화 · 사군자 · 초상화 등 다양한 화목을 넘나들었으며, 초서나 반행서(半行書) 등의 글씨 및 시문에도 능했다. 진경산수화에서는 정선허필, 사의적 남종산수화에서는 강세황, 화조화에서는 심사정의 영향이 나타난다. 생전에 ‘최산수’라 불렸고, 현전 작품도 남종화풍의 산수화가 압도적으로 많다. 이는 그의 예술 세계가 본질적으로 문인화와 맞닿아 있음을 시사해 준다. 1747년 통신사 수행원으로 떠날 때 안산의 이익(李瀷)과 이현환(李玄煥)이 송별시를 지어준 사실도 최북과 안산 문인들이 막역한 사이였음을 알려준다.

최북의 창작 활동은 크게 세 시기로 구분된다. 장년기[17321748]에는 여주 이씨(驪州 李氏) 문인이나 강세황 등과 교유하면서 다양한 화법을 수용하고, 중국 화보를 임모(臨摸)했다. 중년기[17491771]에는 화명이 높아지면서 남종화법의 산수화를 비롯해 진경산수화, 화조화 등 다양한 화목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이때 현전하는 「표훈사도」[개인 소장]와 「사시팔경도」[국립중앙박물관 소장], 「호취응토도(豪鷲凝兎圖)」, 「매화쌍치도(梅下雙雉圖)」 등이 제작되었다. 노년기인 1773년에는 충청북도 음성군에 있는 운곡서원(雲谷書院)의 「주자초상(朱子肖像)」을 이모(移模)했다는 기록이 확인된다. 현전하는 「공산무인도(空山無人圖)」[개인 소장]와 「풍설야귀인도(風雪夜歸人圖)」[개인 소장] 등으로 미루어 보면, 현실을 초월한 처사로서 개성적 문인화풍을 구사했던 것으로 보인다.

최북에 관한 평가는 그와의 직접 교유 여부에 따라 크게 갈린다. 그와 교유한 안산의 여주 이씨 문인들과 근기 지역 남인 소북은 최북과 그의 예술 세계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반면, 그를 접하지 않은 후대인들은 최북의 삶에서 기행을 부각시키며 기인 화가로 만들어 버렸다. 어쨌든 최북은 문인화가와 화원화가가 팽팽한 균형을 이루며 문화적 황금기를 구가하던 18세기 중후반에, 19세기 화단의 새로운 축이 될 여항화가의 탄생을 알리며 변화를 예고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참고문헌

논문

유재빈, 「최북, 기인화가의 탄생」(『대동문화연구』 109,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2020)
변혜원, 「호생관 최북(1712-1786년경)의 생애와 회화세계 연구」(고려대학교 석사 학위 논문, 2008)
정은진, 「『섬와잡저』와 최북의 새로운 모습」(『문헌과 해석』 16, 태학사, 2001)
홍선표, 「최북의 생애와 의식세계」(『미술사연구』 5, 미술사연구회, 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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