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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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림모옥도(최북 작)
석림모옥도(최북 작)
회화
인물
조선후기 「추경산수도」, 「한강조어도」, 「누각산수도」 등을 그린 화가.
이칭
성기(聖器), 칠칠(七七)
이칭
유용(有用), 성재(星齋), 기암(箕庵), 거기재(居基齋), 삼기재(三奇齋)
월성(月城), 호생관(毫生館)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720년(숙종 46)
사망 연도
미상
본관
무주(茂朱)
목차
정의
조선후기 「추경산수도」, 「한강조어도」, 「누각산수도」 등을 그린 화가.
개설

본관은 무주(茂朱). 초명은 식(埴). 자는 성기(聖器)·유용(有用)·칠칠(七七), 호는 월성(月城)·성재(星齋)·기암(箕庵)·거기재(居基齋)·삼기재(三奇齋)·호생관(毫生館). 그는 49세의 나이로 일생을 마쳤다고만 전해져 있다. 그러나 그의 행적을 통해 볼 때 대략 1720년(숙종 46년)에 출생한 것으로 생각된다. 1747년(영조 23년)에서 1748년 사이에 통신사를 따라 일본에 다녀왔다.

생애

심한 술버릇과 기이한 행동으로 점철된 많은 일화를 남겼다. 이에 관해서 남공철(南公轍)의 『금릉집(金陵集)』과 조희룡(趙熙龍)의 『호산외사(壺山外史)』에 비교적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그중에서도 금강산의 구룡연(九龍淵)을 구경하고 즐거움에 술을 잔뜩 마시고 취해 울다 웃다 하면서 “천하 명인 최북은 천하 명산에서 마땅히 죽어야 한다.”고 외치고는 투신하였던 일이라든가, 어떤 귀인이 그에게 그림을 요청하였다가 얻지 못하여 협박하려 하자 “남이 나를 손대기 전에 내가 나를 손대야겠다.”고 하며 눈 하나를 찔러 멀게 해 버린 이야기 등은 그의 괴팍한 성격을 단적으로 알려 주는 대표적인 일화라 하겠다.

그래서 당시의 사람들은 그를 광생(狂生)이라고까지 지목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그가 평양이나 동래 등지로 그림을 팔러 가면 많은 사람들이 그의 그림을 구하기 위하여 모여들었다고 한다. 또한 그는 「서상기(西廂記)」와 「수호전」을 즐겨 읽었으며, 김홍도(金弘道)·이인문(李寅文)·김득신(金得臣) 등과 교유하였다. 그리고 『호산외사』에 의하면 원말 사대가(元末四大家)의 한 사람인 황공망(黃公望)의 필법을 존중하였다고 전한다.

작품세계

현재 남아 있는 그의 작품들에는 인물·화조·초충 등도 포함되어 있으나 대부분이 산수화이다. 그의 괴팍한 기질대로 대체로 치기(稚氣)가 있는 듯하면서 소박하고 시정(詩情) 어린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특히 그의 산수화들은 크게 진경산수화와 남종화 계통의 두 가지 경향으로 나누어진다. 진경산수화에서는 「표훈사도(表訓寺圖)」에 보이는 바와 같이 정선(鄭敾)의 화풍을 연상시키는 것도 있다.

진경산수에 대하여 최북은 “무릇 사람의 풍속도 중국 사람들의 풍속이 다르고 조선 사람들의 풍속이 다른 것처럼, 산수의 형세도 중국과 조선이 서로 다른데, 사람들은 모두 중국 산수의 형세를 그린 그림만을 좋아하고 숭상하면서 조선의 산수를 그린 그림은 그림이 아니라고까지 이야기하지만 조선 사람은 마땅히 조선의 산수를 그려야 한다.”고 그 중요성을 크게 강조한 바 있다.

국립광주박물관 소장의 「한강조어도(漢江釣魚圖)」와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의 「추경산수도(秋景山水圖)」등을 대표작으로 하는 그의 남종화 계열의 작품에서는 심사정(沈師正) 등의 영향이 부분적으로 엿보이기도 한다.

이러한 화풍을 계승, 변천시키면서 개인 소장의 「조어도(釣魚圖)」와 「풍설야귀도(風雪夜歸圖)」에 보이는 바와 같이 대담하고도 파격적인 자신의 조형 양식을 이룩하여 조선 후기 회화의 발전에 기여한 바 크다. 이밖에 대표작으로 개인 소장의 「공산무인도(空山無人圖)」와 간송미술관 소장의 「누각산수도(樓閣山水圖)」 등이 있다.

참고문헌

『금릉집(金陵集)』
『호산외사(壺山外史)』
『한국회화사(韓國繪畵史)』(안휘준, 일지사, 1980)
『한국(韓國)의 미(美)』 12-산수화(山水畵) 하(下)-(안휘준 감수, 중앙일보사, 19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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