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석명 ()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후기 수문장 등을 역임한 무신.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미상
사망 연도
미상
본관
상원(祥原)
주요 관직
수문장
목차
정의
조선후기 수문장 등을 역임한 무신.
생애 및 활동사항

본관은 상원(祥原). 개성에 살면서 사사(射師)가 되어 성동(城東)의 호정(虎亭)에서 제자들에게 궁술을 가르쳤다. 문하에 항상 수십 인의 제자가 있었다.

하루는 제자들이 100발의 화살을 쏘며 100발이 모두 명중하였던 중국 초(楚)나라의 양유기(養由基)를 지칭하면서 궁술이 뛰어난 그의 솜씨를 보고자 하였다. 이에 그가 100발의 화살을 쏘니 모두 명중하였다.

그 뒤로 중국의 양유기에게 비유되었다. 순조 때 춘당대(春塘臺) 유엽사(柳葉射)의 어시(御試)에서 활쏘는 솜씨가 가장 뛰어나, 순조는 그의 재주를 표창하여 ‘조선선사최석명(朝鮮善射崔錫明)’이라는 7자 명칭을 내렸다. 수문장(守門將)을 역임하였다.

참고문헌

『숭양기구전(崧陽耆舊傳)』
집필자
이남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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