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번 83144. 전라남도 구례군 구례면에서 출생. 1951년 7월 광주서중(6년)을 졸업하고, 해군사관학교(海軍士官學校)에 입학하였다. 1955년 4월에 해군 소위(해사 9기)로 임관한 그는 807함을 거쳐 1958년에 701함 포술장(砲術長), 1960년 4월에 203함의 부장(副長), 1962년 초계함(哨戒艦)인 PC707함의 부장(副長)으로 승진하였다.
같은 해 4월 27일 최성모 대위는 함장(艦長)을 대신하여 항해당직(航海當直)을 맡아 이종두·황목원 두 하사와 황영일 일등수병, 그리고 최방순 수병 등과 PC707함을 타고 동해(東海)에서 해상 경비를 하고 있었다.
4월 28일 1시45분경 PC707함이 강릉을 지나고 있던 중에 북한의 공작원으로 707함에 비밀리에 잠입해 있던 최방순 수병이 갑자기 조타실에 들어와 권총을 겨누며 함정의 진로를 북으로 돌리라는 함정나포(艦艇拿捕) 사태에 직면하게 되었다.
그러나 최대위는 권총으로 위협하는 최수병에게 “총알이 무서우면 해군이 되겠어. 대포를 갖다대도 조국을 배반할 수 없다.”라고 단호한 태도를 보이면서 설득하며 제지하려다가 최수병이 쏜 3발의 권총탄을 복부에 맞고 치명적인 부상을 당하였다.
최수병은 이후 이종두(26)·황목원(25) 두 하사와 황영일(22) 일등수병에게 총을 난사하여 부상을 입힌 후에 함교(艦橋)로 나가 권총으로 자살하였다. 최대위는 복부관통으로 치명상을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조타실(操舵室)에서 함장실(艦長室)까지 가서 함장 정만화(鄭萬和) 소령에게 이 사실을 보고한 후에 응급치료를 받았으나 의식을 잃고, 새벽 6시 15분에 30세의 나이로 전사하였다.
그 뒤 707함은 무사히 임무를 수행하고 귀환할 수 있었다. 해군에서는 1962년 5월 1일 함대장(艦隊葬)과 함께 소령으로 일계급 특진시켰고, 충무무공훈장(忠武武功勳章)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