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는 추계(秋溪). 황해도 연백출신. 1919년 경성여자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1925년 니혼여자대학 사회사업학부를 중퇴하였다. 그 뒤 1969년 중앙대학교에서 명예문학박사를 받았다.
1924∼1931년 조선일보 기자·학예부장을 지냈고, 1927년 근우회(槿友會) 중앙위원, 1948년 대한부인회 서울시부회장, 대한여자국민당 서울시당수(1962), 한글학회 지도지원(1971), 3·1국민회의 대표위원(1971∼1973), 3·1운동여성참가자봉사회장(1981) 등을 역임하였다.
3·1운동에 앞장서 두 번이나 옥고를 치른 바도 있으며, 우리나라 여기자 제2호로서, 조선일보사 재직 8년 동안 남자기자에 못지않은 능력을 과시하였다. 여성기자로서 선구적인 활동을 하는 한편, 와세다대학(早稻田大學) 법과 통신강의과정을 수료하는 맹렬을 보이기도 하였다.
일제강점기에 가장 활발한 활동을 벌인 여기자의 한 사람으로서 한국 최초의 방송아나운서를 지냈고, 비행기 취재를 하기도 하였다. 8·15광복 후 여성신문사와 주간생활신보사의 고문을 지내기도 하였다.
대한부인회 간부로서 여성운동에 참여하였으며, 이 회의 기관지 『풀이』의 주간을 역임하였다. 또 여성실천운동자클럽·서울보건부인회 등을 조직하기도 하였다.
별세하기 2년 전 모든 재산을 정리한 후 조선일보사에 5000만원을 맡겨 ‘한국여기자상’을 제정하게 되었고, 모든 자료는 한국가정법률상담소에, 그리고 가재도구는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하였다.
저서로는 자신의 걸어온 길을 쓴 『씨뿌리는 여인』(1957)·『근역의 방향』(1961)·『조국을 찾기까지』(1973)와 한국여성근대사를 정리한 『여성전진 70년』(1980)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