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수주(水州: 지금의 경기도 수원). 증조는 내사령(內史令) 최사위(崔士威)이고, 조부는 상서우복야(尙書右僕射) 최충공(崔忠恭)이며, 수사재소경(守司宰少卿) 최수신(崔壽神)의 아들이다. 어머니는 강성군대군(江城郡大君) 문씨(文氏)이다.
1108년(예종 3) 외고조부 삼한공신대상(三韓功臣大相) 김칠(金柒)의 문음(門蔭)에 의하여 서리(胥吏)가 되었다. 그 뒤 과거에 응시 현과(賢科)에 합격하여 용강현위 연해감선사(龍岡縣尉沿海監船使)에 임명되었다가, 1141년(인종 19) 시합문지후(試閤門祗候)로서 풍주방어사 겸 권농사(豊州防禦使兼勸農使)가 되었다. 1144년 임기가 만료되고 나이 70세가 되어 치사(致仕)하여 개경에 돌아왔으나, 2년 뒤 봉선고(奉先庫: 先王과 先后의 제사에 쓰기 위해 미곡을 비축해 두던 창고 기관) 부사(副使)에 임명되어 다시 관직에 나아갔다. 1157년(의종 11) 6월 병진일에 향년 82세로 죽었다.
최정은 인물됨이 총명하고 정직하였으며, 마음을 담박하게 가져 물아(物我)를 잊었고, 불학(佛學)에 정진하여 완연히 세속사람의 테를 벗어났다고 한다.
최정의 묘지명은 1163년(의종 17) 국학학유(國學學諭) 전대여(全代予)가 지었으며,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