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자상(子相), 호는 서주(西洲). 아버지는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 최기원(崔起源)이며, 어머니는 이대기(李大基)의 딸이다.
영의정 최명길(崔鳴吉)의 사촌동생이다. 어려서부터 예지와 문장이 뛰어나 일찍이 사조(詞藻: 수식이 많은 詩文)를 지었는데, 그 시격이 고고하여 당대 대가들로부터 찬사를 받았다.
1638년(인조 16) 정시문과에 응시, 처음 1등에 뽑혔으나 고관(考官)이 뒤늦게 오자가 있음을 발견하고 등급을 낮추려 하였는데, 김육(金堉)은 근래 보기드문 뛰어난 글이라고 칭찬하며 애석히 여겼다.
그 뒤 과거에 나가지 않았는데 최명길이 그의 재주를 아깝게 여겨 여러 번 천거하려 하였으나 사양하고 거처를 인천으로 옮겨 꽃을 가꾸고 시를 읊으며 자연을 즐겼다.
정묘호란 이후 적의 재침이 반드시 있을 것으로 예측하고, 큰 배를 준비하여 위급할 때를 대비하였는데, 때마침 1636년에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모든 사람들이 허둥지둥하였지만 그의 가족은 모두 무사, 온전하였다.
처음 그를 어리석게 여겼던 사람들은 그제서야 그의 선견지명에 감탄하였다. 부모를 효성으로 지극히 섬기고 자녀를 훈계하는 데 법도가 있어 집안을 엄숙하게 다스렸고, 노령에도 규칙적인 생활을 하며 학문을 멀리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