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6년 함경북도 성진에서 출생했다. 1924년 상경하여 동덕여학교에 편입학했으나, 숙명여자고등보통학교를 졸업했다. 1927년 단천에서 단천여자청년회를 창립했으며, 1929년 중앙보육학교를 졸업하고 경상남도 함안유치원 보모로 근무했다. 1930년 일본 동경으로 건너가 미카와(三河)유치원 보모로 일하면서 학생극예술좌(學生劇藝術座)에 참가했다.1931년 귀국 삼천리사에 입사했으며, 이해 10월 단편소설 「정당한 스파이」를 발표하면서 문단에 데뷔했다. 1932년 신흥예술사 창립에 참여했으며, 1934년 2월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동맹(KAPF)사건 맹원(盟員)의 2차 검거 때 맹원과 연루된 혐의로 전주형무소에 구속되었다가 1935년 12월 무죄로 풀려났다.
전시체제가 형성되면서 일제협력에 적극적이었다. 1941년부터 1942년까지 조선문인협회 간사를 지냈으며, 1941년 9월 임전대책협력회의 채권가두유격대(債券街頭遊擊隊)에 참가했다. 같은 달 조선임전보국단 발기인으로 참여한 뒤 10월부터 1942년 10월까지 평의원으로 활동했다. 1941년 12월 13일 조선문인협회가 주최하는 결전문화대강연회에서 시를 낭독했으며, 27일 조선임전보국단 결전부인대회에서 「군국의 어머니」라는 강연을 했고, 강연내용은 1942년 5월 『대동아』에 게재되었다. 1942년부터 경성방송국에서 근무했다.
해방 후 1946년 전조선문필가협회, 1949년 한국문학가협회의 추천회원으로 참여했으며, 한국전쟁 당시 남편 김동환이 납북되자 공군종군작가단 창공구락부에서 활동했다. 1957년 『주부생활』 주간을 지냈으며, 1969년 한국여류문학인회 회장, 1970년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소설협회 대표위원 등으로 활동했다. 1990년 12월 21일 사망했다.
작품으로는 「정당한 스파이」(1931)·「흉가」(1937)·「인맥」(1940)·「천맥」(1941)·「점례」·「풍류 잡히는 마을」(이상 1947), 단편집 『천맥』(1948)·「녹색의 문」(1953), 동화집 『장다리꽃 필 때』(1954), 창작집 『바람 속에서』(1955)·「데드 마스크의 비극」·「찬란한 대낮」(이상 1956)·「인간사」(1960)·『별을 헤는 소녀들』(1962)·「강물은 또 몇 천리」(1964)·「제2여자의 풍경」·「제3여자의 풍경」(이상 1967)·「바다」·「205병실」(이상 1970)·『찬란한 대낮』·『탑돌이』(이상 1976)·「화투기」(1980) 등을 발표, 간행했다. 이외에 친일작품으로 「어머니의 마음」(1939)·「환영의 병사」(1941)·「2월 15일의 밤」·「야국초」·「장미의 집」(이상 1942)·「하루바삐 본받을 내지(內地)의 습속(習俗)」(1943)·「군국의 어머님들」·「군국모성찬」(이상 1944)·「징용열차」(1945) 등이 있다.
최정희의 이상과 같은 활동은 「일제강점하 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 제2조 제11·13·17호에 해당하는 친일반민족행위로 규정되어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 보고서』 Ⅳ-18: 친일반민족행위자 결정이유서(pp.303∼343)에 관련 행적이 상세하게 채록되었다.
1958년 서울특별시문화상, 1964년 제1회 여류문학상, 1971년 대한민국예술원 문학부문 작품상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