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는 소민(素民). 경상북도 영일(迎日) 출신. 1940년대의 민족계몽운동적 항일운동가이다.
1940년 3월 신병으로 보성중학교를 휴학하고, 동년 9월 일본 도쿄(東京)에 건너가 연수학관(硏數學館) 영문과에서 수학하며 일본에서의 민족차별에 분개하였다.
동년 12월 도쿄에서 성장환(成章煥) 등과 조국독립의 실천적 방안으로 우선 민족문화의 향상과 실력양성에 힘을 쏟기로 하고 효민회(曉民會)를 조직했다고 한다. 1941년 4월에 귀국하여 여대현(呂大賢)과 동지적 결합을 맺었다.
독립을 위해 민족문화 및 경제력의 향상에 힘쓰는 한편 조선어연구를 통한 민족계몽운동을 전개하였다. 그리고 1943년 3월 서울에서 성장환, 여대현, 최은석(崔恩錫)과 함께 일본의 패망을 예지하고 독립운동의 구체적 실천방안을 수립하고 본격적인 활동을 전개하였다.
일경에 체포되어 1944년 1월 대구지방법원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5년형을 받고 옥고를 치르다가 광복으로 출옥하였다. 광복 후에는 조국의 건설에 기여하여 경제계에서 활동하였으며 쌍용양회의 부회장을 지내기도 하였다.
1963년 대통령표창, 1977년 건국포장,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