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책, 필사본. 1893년 3월 충청도 보은에서 열린 동학의 신원운동과 관련해서 보은 관아와 중앙 정부, 그리고 동학교도가 발행한 문서를 주로 등사해 놓은 것이다. 이 밖에 이듬해 전봉준의 무장봉기 직후에 나온 전보를 비롯한 각종 문서와 동학농민군의 무장포고문이 실려 있다.
또한 이건창 등 주요 인물들의 시국 상소문도 포함되어 있다. 필자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병영 보고서의 초본까지 실린 것으로 미루어 당시 보은군수였던 이중익(李重益)일 가능성이 높다. 아니면 보은 관아의 이서였을 것이다. 취어의 가치는 동학의 보은취회에 관한 자료 가운데 가장 상세하고 정확한 정보를 담고 있다는 점에 있다.
동학교도가 보은 장내리로 모이기 시작했을 때부터 4월 초 해산할 때까지 군수 자신이나 이서 및 장교가 탐지하고 동학교도와 접촉한 정보를 중앙 정부와 감병영에 보낸 보고서는 분량이 많은 편이다.
탐지 내용이 아주 구체적인데, 각 길목을 지나간 동학교도의 숫자와 그들의 출신지까지 보고한 것으로 보아 탐지 활동이 아주 활발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결과 그 안에는 동학교도들의 전체적인 동향, 지도부의 갈등과 같은 은밀한 내부 사정, 구두로 직접 전달된 요구 조건 등도 실리게 되었다.
그리고 다른 민중운동의 사례에서는 거의 찾아보기 어려운데, 운동의 당사자들이 직접 발표한 문서들이 들어 있다. 즉 동학 급진세력들의 의식과 지향을 보여주는 「보은관아통고」, 척왜양(斥倭洋)이란 취회의 명분을 뚜렷하게 내세운 「동학인방」 등이 있다.
그리고 서병학 등 지도부가 창의유생으로 자처하며 취회의 목적을 척왜양이라고 밝히면서 왕에게 올린 「동학인문」, 동학교도가 스스로를 통제하기 위해서 발령한 「동학인령」 등도 있다.
그리고 관변측의 자료로서 고종의 「윤음」, 양호도어사 어윤중이 발표한 「효유문」과 「장계」, 그가 조사한 충청감사 조병식과 영장 윤영기의 탐묵 조사 보고서인 「탐학장문」 등이 포함되어 있다. 서울대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다. 국사편찬위원회에서 발간한 동학란기록(東學亂記錄) 상권에 실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