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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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이 직접 농사를 짓는 모범을 보여 백성에게 농업의 중요성을 인식시키고 널리 농업을 권장하기 위하여 행하는 국가의식. 권농의식.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김영진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왕이 직접 농사를 짓는 모범을 보여 백성에게 농업의 중요성을 인식시키고 널리 농업을 권장하기 위하여 행하는 국가의식. 권농의식.

내용

우리나라에서 이와 같은 친경행사의 기원은 고려 성종 2년(983) 왕이 원구(圓丘)에서 풍작을 빌고 몸소 적전(藉田)을 갈았다는 데에서 비롯된 것 같다. 조선에서는 1405년(태종 5) 7월의정부의 건의에 따라 적전과 원구를 한양으로 이설하였다는 기록이 있으며 이때부터 친경의식은 서울에서 거행되었다. 천경의식을 하던 위치는 선농단(先農壇)이었던 지금의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용두동 138번지 바로 남쪽이며 선농제(先農祭)를 지낸 뒤 친경행사가 있었다.

1476년(성종 7)에는 이 곳에 친경대(親耕臺)를 쌓았고, 왕이 친경할 때에는 왕세자·종신(宗臣) 그리고 나이가 많고 복 많은 농부들이 순서대로 뒤이어 적전을 갈았다.

1767년(영조 43)에 제정된 『친경의궤(親耕儀軌)』를 보면 왕은 5추례(五推禮), 세손은 7추례, 종신 이하는 9추례를 행하여 왕비가 친잠할 때와 같이 가는 횟수를 직함에 따라 규정하였다. 이때 친경우(親耕牛) 두 마리를 검은 소로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왕의 친경우는 일반 농구와 달리 두 마리의 소가 끌었던 것 같다.

왕의 친경이 끝나면 왕은 친경대에 오르고 이어서 왕세자(손)·재신·종신들의 추례 광경과 농부 50인이 50두의 멍에를 씌운 소를 이용하여 나머지 밭을 모두 가는 광경을 보게 되었다. 이 50인의 선발된 농부를 종경인(終耕人)이라 불렀다.

이와 같은 행사가 끝나면 친경대에서 노인에 대한 위로주를 베풀고 끝냈다. 이와 같은 친경의식은 왕이 나오기 전에 오늘날의 예행연습과 같은 습의(習儀) 절차가 있었다. 이 친경의식은 순종이 마지막 행사를 하고 일제강점기에 들면서 폐지되었다. 8·15광복 후에는 권농일(勸農日)을 제정, 고위공직자가 관민합동으로 모내기를 함으로써 대신해오다가 제3공화국 때부터는 대통령이 직접 참여하는 관민합동의 모내기행사로 이어지고 있다.

참고문헌

  • - 『고려사절요』

  • - 『조선왕조실록』

  • - 『친경의궤(親耕儀軌)』

  • - 『농림수산고문헌비요』(김영진, 한국농촌경제연구원, 19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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