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경의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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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경의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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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67년 친경과 더불어 장종(藏種) · 수견(受繭)하는 과정을 기록한 의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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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1767년 친경과 더불어 장종(藏種) · 수견(受繭)하는 과정을 기록한 의궤.
내용

70장 1책. 필사본.

친경이란 왕이 농업장려에 솔선하는 뜻으로 적전(籍田)에 나가 몸소 갈고 씨뿌리는 의례를 말하며, 의궤란 뒷날 이를 본보기로 삼도록 그 절차나 행사내용을 기록한 책이다. 같은 해 3월에는 왕비가 행하는 ≪친잠의궤 親蠶儀軌≫가 엮어졌고, 5월에는 ≪장종수견의궤 藏種受繭儀軌≫가 엮어졌다.

이 책은 전교(傳敎)·계사(啓辭)·이문(移文)·내관(來關)·감결(甘結)·의주(儀註) 등의 순으로 편찬되었는데, 그 내용을 행사순서대로 간략히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우선 친경의식 전체는 예조판서가 겸직한 예의사(禮儀使)가 총괄하였다. 그러나 친경부분은 호조판서가 겸직한 경적사(耕籍使)가 담당하고, 정월 26일 오시(午時)에 행사를 하도록 되어 있다.

이에 앞서 20일 의식을 익히는 습의(習儀)가 있는데, 이때까지는 적전 현지에 설치하는 관경대(觀耕臺) 등이 설계도면대로 완성되어야 한다. 다만 왕의 경적위(耕籍位), 왕세손의 시경위(侍耕位)는 친경일 하루 전에 설치하도록 되어 있다. 친경일 새벽 태실(太室)에서 고유제(告由祭)을 올리고, 친경행차에는 왕세손이 수행하도록 되어 있다.

왕이 경적위에 자리잡은 뒤 경적례(耕籍禮)가 거행되는데 적전령(籍田令)이 친경뢰석(親耕耒席)에 나가 쟁기[耒]를 봉상시정(奉常寺正)에게 주면 봉상시정은 이를 근시(近侍)에게 준다. 이때 사복시(司僕寺)에서는 소를 데리고 나간다. 왕은 예의사의 청에 따라 쟁기를 잡으면 근시 한 사람과 고품중관(高品中官)이 더불어 쟁기를 잡게 되며, 사복시정은 고삐를 잡는다.

이렇게 하여 친경 5추례(五推禮)가 끝나면 쟁기를 근시를 거쳐 적전령에게 넘겨 주고, 왕은 친경대(親耕臺)에 오른다.

이어서 왕세손이 같은 절차에 따라 7추례, 재신·종신 등이 9추례를 행한다. 그다음 시경종경관(侍耕從耕官)과 문무백관이 친경대 아래에 자리잡고 봉상시(奉常侍)·판관사(判官師)·서인(庶人)의 차례로 미리 준비된 50두의 소로 백묘(百畝)의 넓이를 간다. 이때 친경우 두마리는 검은 소로 준비하도록 되어 있다. 갈이[耕]가 끝난 뒤 왕에게 사배(四拜)하게 되면 왕은 왕세손과 더불어 퇴장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봉청상관(捧靑箱官)이 동륙종(穜稑種)을 봉상시정에게 주어 경소(耕所)에 나가 뿌린 뒤 친경대에서 기서민(耆庶民)에게 위로주를 베풀고, 친경례가 모두 끝나게 된다.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도서에 있다.

참고문헌

『농림수산고문헌비요』(김영진, 한국농촌경제연구원, 19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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