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태평양문제연구회는 1925년 11월 동아시아 ‧ 태평양 문제를 연구하기 위해 결성된 민족주의 계열의 정치단체이다. 1925년에 개최된 제1차 태평양회의에 참석하고 국내에 돌아온 신흥우, 유억겸, 송진우 등은 태평양문제연구회 조선지회를 설립하여 정치운동을 전개하고자 하였다. 1925년 11월 28일 서울 기독교청년회관에서 창립모임이 열렸다. 태평양문제연구회 조선지회는 중앙기독교청년회 및 『동아일보』 ‧ 『조선일보』를 중심으로 한 국내 민족주의 세력이 중심이 되었다. 또한, 이승만과 연결된 비밀조직인 흥업구락부와 밀접한 관계를 맺었다.
정의
1925년 11월 동아시아 ‧ 태평양 문제를 연구하기 위해 결성된 민족주의 계열의 정치단체.
변천 및 현황
1925년 1월 하와이 호놀룰루에서 개최되었던 제1차 태평양회의를 계기로 국제적 민간 학술기관인 태평양문제연구회(Institute of Pacific Relations)의 결성으로 이어졌다. 제1차 태평양회의에 국내에서는 김양수(金良洙), 김종철(金鍾哲), 송진우(宋鎭禹), 신흥우(申興雨), 유억겸(兪億兼) 이상 5명이 참가하였다. 이 회의에는 미국, 필리핀, 일본, 조선, 중국,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등지에서 140여 명이 참석하였다.국내에 돌아온 송진우, 신흥우, 유억겸 등은 태평양문제연구회 조선지회[이하 조선지회]를 설립하여 대외적으로 미국에 대한 기대감을 조장하는 한편 대내적으로는 이 단체를 이용하여 정치운동을 전개하고자 하였다. 1925년 11월 28일에 서울 기독교청년회관에서 조선지회의 창립모임이 열렸다. 위원장에 윤치호(尹致昊), 서기 겸 회계에 신흥우를 선출하였다.
조선지회는 중앙기독교청년회 및 『동아일보』 ‧ 『조선일보』를 중심으로 한 국내 민족주의 세력이 중심이 되었다. 회원들은 대부분 20대 후반에서 40대 중반까지의 청 ‧ 장년층이며, 서울 ‧ 경기 ‧ 충청도를 중심으로 한 기호파(畿湖派) 인물들이 중심이었다.
조선지회는 이승만과 연결된 비밀조직인 흥업구락부(興業俱樂部)와 밀접한 관계를 맺었다. 다시 말해 미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이승만(李承晩)으로 대표하는 외교 독립론자와 기독교 및 『동아일보』 계열의 국내 실력 양성론자 사이의 연대 속에서 조선지회가 설립되었다.
국제적 민간 학술단체인 태평양문제연구회는 2년마다 태평양회의를 개최하였다. 1927년, 1929년, 1931년 각각 제2차, 제3차, 제4차 회의가 열렸는데, 식민지 조선인은 독자적인 지부 조직으로 인정받지 못하여 출석권을 가질 수 없었다.
특히 사회주의 계열은 1931년의 제4차 회의를 계기로 태평양회의를 부정하고 민족주의 계열의 활동을 비판하였다. 사회주의 계열의 비판과 더불어 태평양회의 주최 측에서 조선인의 회의 참가를 거부함으로써 조선지회는 사실상 활동을 중지하면서 해체된 것과 다름없게 되었다.
참고문헌
단행본
- 고정휴, 『태평양의 발견 대한민국의 탄생』(새미, 2021)
논문
- 김경일, 「식민지 시기 국제 민간 기구의 내용과 성격- 태평양문제연구회(IPR)와 태평양회의를 중심으로-」(『한국민족운동사연구』 39, 한국민족운동사학회, 2004)
- 고정휴, 「태평양문제연구회 조선지회와 조선사정연구회」(『역사와현실』 6, 한국역사연구회, 1991)
주석
-
주1
: 아시아 · 태평양 지역에서 국제적인 비정부 기구(INGO)의 효시로 평가받는 ‘태평양문제연구회(IPR: Institute of Pacific Relations, 1925~1961)’가 1925년부터 2~3년 주기로 개최했던 회의를 가리킨다. 이 회의에는 아시아 · 태평양 지역의 국가와 식민지 민족들과 더불어 이 지역에 관심을 갖고 있던 영국 · 프랑스 · 소련 등이 참여함으로써 20세기 전반기 최대의 국제적 민간 회합으로서 세계의 이목을 끈 바 있다. 우리말샘
-
주2
: 민족주의 운동가 중 이승만을 중심으로 하는 서울 · 경기 지역 출신 혹은 임시정부 계열을 가리키는 말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