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가에서는 아기가 태어나면 태를 즉시 백자항아리에 담아 산실 안에 미리 점지해놓은 길방에 안치하여두었다가 잘 밀봉하여 태봉(胎封)에 묻는 풍습이 있었다. 이 때 그냥 묻는 것이 아니고 길일을 택하여 태를 깨끗이 씻은 다음 다시 항아리에 넣어 밀봉하여 묻었다.
그 절차는 먼저 헌 동전 한개를 자면(字面)이 위가 되게 조그만 백항아리 밑바닥 중앙에 깔고 세척한 태를 그 위에 넣는다. 그리고 기름종이와 남색 비단으로 항아리 입구를 덮고 빨간 끈으로 단단히 밀봉한다.
이것을 다시 더 큰 항아리에 넣는데, 먼저 항아리 밑에 솜을 깔고 태항아리를 넣은 다음, 다시 그 주위의 공간을 솜으로 메운다. 솜을 태항아리의 입 높이까지 가득 채운 뒤 초주지(草注紙)로 다시 그 위를 덮는다.
이리하여 안의 태항아리가 움직이지 않게 고정시킨 뒤 다시 겉항아리 입에서 손가락 하나 길이쯤 떨어지는 정도까지 솜을 채운 뒤에 감당(甘糖)으로 원편(圓片)을 만들어 항아리 입에 넣고 화기(火氣)를 들여 밀폐하고 다시 그 위에 마개를 막아 완전히 밀봉한다.
그리고 빨간 끈으로 항아리 사면을 매고 빨간 패에 “모년 모월 모일 모시 중궁전 아기씨 태야(某年某月某日某時中宮殿阿只氏胎也)”라 써서 달아 맨다. 그리고 넓적한 독 안에 넣고 삭모전(槊毛氈)을 두르고 뚜껑을 닫았다.
이와같이 태를 항아리에 넣어 보관하는 풍속은 왕가뿐 아니라 가산(家山)을 가지고 있는 중류 이상의 가정에서도 실시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