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책진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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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사
단체
1921년 중국 상해에서 조직되었던 단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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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1921년 중국 상해에서 조직되었던 단체.
내용

신채호(申采浩)·김정묵(金正默)·박봉래(朴鳳來) 등이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개혁을 촉구하기 위해 발기한 단체이다. 1920년대 초, 만주와 노령에는 많은 항일무장독립운동단체들이 조직되어 있었으나, 지휘계통이 통일되어 있지 않아 효율적인 항일투쟁을 펼치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1921년 4월 서로군정서(西路軍政署) 등 10개 독립운동단체 대표들이 북경(北京)에 모여 군사통일주비회(軍事統一籌備會)를 개최하고, 만주 지역 항일무장운동단체의 지휘계통을 통일하기로 결의하였다. 이어 총지휘부를 임시정부로 할 것인가, 별도의 군사통일기구를 조직할 것인가를 놓고 회의를 계속하였다.

회의 중 임시정부 임시대통령 이승만(李承晩)이 미국에 조선의 위임통치를 청원한 사실이 있음이 확인되자, 군사통일주비회는 임시정부와 임시의정원의 불신임을 결의하고 임시의정원의 해산을 요구하였다. 이 때 군사통일주비회의 노선을 지지한 단체가 통일책진회이다.

발기인들은 「통일책진회발기취지서」를 작성해 배포하였다. 그 내용은 ‘첫째 진정한 독립정신 아래 통일적 광복운동을 하고, 둘째 정부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해 시국을 수습하고, 셋째 군사단체를 완전히 통일해서 혈전을 꾀한다.’로 되어 있다.

이 단체의 발기는 군사통일주비회의 움직임과 함께 이승만에게 큰 타격을 주어, 그를 태평양회의 참가를 구실로 상해를 떠나게 만들었다. 뿐만 아니라, 임시정부를 개혁하기 위한 국민대표회의 소집을 촉발시키기도 하였다.

참고문헌

『신채호의 사상과 민족독립운동』(단재신채호선생기념사업회, 형설출판사, 1986)
『신채호의 사회사상연구』(신용하, 한길사, 1984)
『독립운동사』4(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4)
『개정판 단재신채호전집』하(단재신채호선생기념사업회, 형설출판사, 1972)
『朝鮮獨立運動』2(金正明 編, 原書房, 19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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