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비량론』은 671년 승려 원효가 추론식 형식의 여러 주장을 비판적으로 검토한 불교서이다. 비량 중에서도 타인을 위한 논증의 일종인 추론식 형식으로 주장된 여러 주장을 비판적으로 검토한 논서인데, 이 논서는 산실된 문헌으로 알려져 있었지만, 1967년 일본의 간다 기이치로가 소장했던 초서체 필사본이 영인되어 출간되었다. 이 영인본은 해서체로 복원되어 『한국불교전서』 제1책에 실렸다.
1권이다.
『판비량론』은 남북국시대 통일 신라 승려 원효(元曉, 617~686)가 671년에 저술한 문헌이다. 이 책은 추리를 의미하는 비량(比量), 특히 타인을 위한 비량[爲他比量]인 추론식으로 작성된 여러 주장을 비판적으로 검토한 문헌이다.
이 문헌은 저술 직후 중국과 일본에 전해진 것이 확인된다. 중국의 경우는 혜소(惠沼, 650714)가 『성유식론요의등』에서 인용하고, 일본의 경우 740년[덴표(天平) 12]에 제작된 『사경소계(寫經所啓)』에 언급되기 때문이다. 이 중 중국으로 전해진 필사본은 산실되었고, 일본에서는 에도시대[江戶時代, 16031867] 초기까지는 온전한 형태로 전해진 것이 확인된다. 이후 에도시대 말기에 조각으로 나뉘어져 산실되고 말았다.
현재까지 확인되는 『판비량론』 필사본은 모두 3종이다. ①회향계가 실린 단편, ②3장본 단편, ③11행본 단편이다. 이 중 ①과 ②를 1967년 간다 기이치로[神田喜一朗]가 후키하라 쇼신[富貴原章信]의 연구와 함께 주1으로 출판하였다. 이 영인본 출판 직후인 1969년에 ③도 후키하라에 의해 소개되었다. 후키하라의 연구에 따르면 『판비량론』 전체 분량은 총 25장, 58절, 867행일 것으로 추정된다. 현존하는 ①②③을 모두 합한 분량은 121행이며 이는 전체 분량의 약 7분의 1 정도이다. 한편, 신라 태현(太賢)이나 일본의 젠주[善珠] 혹은 조준[藏俊]의 저술에 인용된 일문을 합하면 전체 분량의 약 5분의 1 정도의 원문이 수집될 수 있다.
『판비량론』은 논증식 형식으로 제시된 여러 주장을 원효가 비판적으로 검토한 문헌이다. 이 중에는 주2이 직접 고안했다고 전해지는 ‘유식을 논증하는 추론식[唯識比量]’과 ‘ 대승이 주3임을 논증하는 추론식’도 포함되어 있다. 이 외에 아홉 가지 논의가 현존하는 필사본에 전해진다. 이 아홉 가지 논의 중 전모를 알 수 있는 것은 여섯 가지 뿐이고, 나머지 세 가지는 필사본의 일부가 망실되어 그 취지를 정확히 파악하기 힘들다. 이 아홉 가지 논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➀산일부1: 유식비량과 관련한 단편으로서, 상위결정 논증식을 이용하여 현장의 유식비량을 비판하는 내용이다.
②산일부2: 대승불설 논증과 관련한 단편으로서, 대승이 불설이라는 승군과 현장의 논증식을 모두 비판하고 대승불설을 논증하는 새로운 추론식을 제시한다.
③필사본 제7절: 정토는 드러나지 않는다는 인식을 비판하는 내용이다.
④필사본 제8절: 주4이 주장하고 주5이 정통으로 삼는 식의 사분설(四分說)을 비판하는 내용이다.
⑤필사본 제9절: 제8 아뢰야식의 존재 증명에 관한 내용이다.
⑥필사본 제10절: 아뢰야식은 동시에 존재하는 의지처로서 감관을 갖는다는 호법의 주장을 비판하는 내용이다.
➆필사본 제11절: 주6가 제시한 아홉 가지 이유 명제[九九因] 중 제5구인인 곧 긍정적 수반 관계의 실례도 전혀 존재하지 않고 부정적 수반관계의 실례도 전혀 존재하는 이유명제는 부정인(不定因)임을 논증하는 내용이다.
⑧필사본 제12절: 모순되는 이유명제를 가진 추론식의 두 가지 이유명제가 부정인(不定因)임을 논증하는 내용이다.
⑨필사본 제13절: 오성각별설(五性各別說)을 비판하는 원효 주장에 대한 반박을 재비판하는 내용이다.
⑩ 필사본 제14절 주7과 법집에 대한 논파와 관련된 논의이다.
⑪ 11행 본 필사본: 『구사론』과 『순정리론』에 나타나는 ‘두 감관이 함께 작용할 경우 유(類)는 같으나 상(相)은 다르다’는 주장을 비판하는 내용이다.
원효는 일반적으로 서로 다른 견해를 화해시키고 회통시키는 화쟁의 사상가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판비량론』을 통해 본 원효는 이런 통념을 크게 벗어난다. 『판비량론』에서 원효는 동아시아 법상종의 시조이자 최고의 역경승 현장을 서슴없이 비판한다. 그의 비판의 칼날은 현장의 스승인 호법도 비켜가지 않는다. 나아가 스스로 제8 아뢰야식을 논증하는 추론식을 만들거나, 추론식을 이용한 부정인의 문제도 다루고 있다. 이런 면모는 원효를 화쟁사상가로만 보는 것이 단편적임을 보여준다. 『판비량론』을 통해 보는 원효는 화쟁가라기 보다는 치열한 논쟁가 혹은 논리학자에 가깝다. 이 점에서 『판비량론』은 원효 이해의 지평을 넓혀주는 문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