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남사리 고분군 ( )

고대사
유적
평양직할시 락랑구역에 있는 낙랑군 시기의 무덤군.
유적/고인돌·고분·능묘
양식
무덤군
건립 시기
초기국가시대
관련 국가
한나라
소재지
평양직할시 락랑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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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

평양남사리고분군(平壤南寺里古墳群)은 평양직할시 락랑구역에 있는 낙랑군 시기의 무덤군이다. 1969년 사회과학원 고고학연구소에서 덧널무덤인 남사리 1호분과 벽돌무덤인 남사리 2호분이 발굴되었으며, 2010~2011년 중국 연변대학 발해사연구소와 북한 사회과학원 고고학연구소가 벽돌무덤인 남사리 154호분을 발굴하여 보고하였다.

정의
평양직할시 락랑구역에 있는 낙랑군 시기의 무덤군.
발굴경위 및 결과

평양남사리고분군은 북한 평양직할시 락랑구역 내 남사리에 있는 낙랑군 시기의 고분군이다. 1969년 덧널무덤인 남사리 1호분과 벽돌무덤인 남사리 2호분이 발굴되었으며, 2010-2011년 중국 연변대학 발해사연구소와 북한 사회과학원 고고학연구소가 벽돌무덤인 남사리 154호분을 발굴하여 보고하였다.

이 밖에도 『락랑구역 일대의 고분 유적 발굴 보고』(리순진, 김재용, 2002, 사회과학출판사)와 『평양 일대 락랑무덤에 대한 연구』(리순진, 2001, 도서출판 중심) 등에는 평양남사리고분군에서 조사된 다수의 벽돌무덤이 언급되어 있지만, 상세한 발굴 보고가 이루어지지 않아서 발굴 내용을 파악하기는 힘들다.

형태와 특징

제1호분은 오봉산의 동북쪽 기슭에서 북쪽으로 약 300m 떨어진 지점에 자리한다. 봉토(封土)의 지름이 24m, 높이 3.5m인 원형의 덧널무덤이다. 무덤구덩이를 긴 타원형으로 파 내려가다가 중간에 단을 만들고 다시 조금 좁게 파 내려가 무덤구덩이 윗부분과 바닥의 넓이가 다르다. 윗부분의 크기는 길이 9.5m, 너비 5.5m이며, 바닥은 길이 7.5m, 너비 3.4m이다.

무덤구덩이 안에는 남북 7.5m, 동서 3.4m의 장방형 덧널을 설치하였으며, 덧널의 위쪽 부분이 무덤구덩이 중간에 형성된 단과 같은 높이가 되도록 축조하였다. 덧널 안에는 남쪽에 한 변의 길이가 3m에 이르는 방형의 으뜸덧널을 따로 설정하였다.

그 속에 동서를 긴 축으로 9개의 각재를 듬성듬성 놓은 다음, 그 위에 나무널 2개를 남북 방향 긴 축으로 나란히 안치하였다. 부장품은 칠반(漆盤)을 비롯한 약간의 칠기와 토기류 등이 수습되었다.

제2호분은 오봉산의 주봉(主峰)에서 동남쪽으로 약 600m 떨어진 곳에 자리한다. 벽돌방인 앞방과 뒷방, 그리고 앞방의 양옆에 딸린 1개의 감실(龕室)이 있는 벽돌무덤으로, 지면에서 약 1m 가량 판 뒤 널방을 만든 반지하식이다.

봉토의 크기는 남북 26m, 동서 24m이다. 남쪽에 있는 4.5m 길이의 무덤길을 거쳐 1.2m 길이의 널길에 이르게 되어 있다. 널길은 안으로 들어갈수록 조금씩 좁아지며 낮아졌다. 바닥과 벽 모두 벽돌로 축조되었으며, 벽은 187㎝ 높이까지는 벽돌을 사용해 조금씩 안으로 기울어지도록 질서정연하게 쌓고, 그 위로는 길이 1.6m 크기의 두꺼운 화강암 널돌을 덮은 다음 다시 벽돌을 3겹 정도 더 쌓았다.

앞방은 동서 3.8m, 남북 3.4m의 크기로 축조되었다. 바닥은 벽돌을 두 겹 정도 깔았다. 벽의 두께는 약 30㎝ 정도이다. 벽은 높이 2m 정도까지는 경사가 미미하나 그 위로는 점차 심해져서 궁륭식구조(穹㝫式構造)의 천장을 이루었다. 바닥으로부터 가장 높은 곳까지의 높이는 약 5m에 이른다.

앞방의 서북쪽에는 각 변 2m, 높이 28㎝의 제단을 쌓았고, 동 · 남 · 북 3벽의 중앙에는 터널식의 문을 내었다. 동쪽 문은 감실로 통하는 문으로 감실의 크기는 동서 1.7m, 남북 1.45m, 높이 2.3m이다.

뒷방은 남북 4.1m, 동서 4.6m 규모로 축조하였다. 축조 방식은 앞방과 비슷하다. 뒷방에는 3개의 나무널이 남북을 긴 축으로 들쑥날쑥하게 놓여 있었다. 부장품은 뒷방에서는 말재갈 모형을 비롯해 주로 거마구(車馬具)가 출토되었다. 앞방에서는 제단 위에 놓인 금동칠반(金銅漆盤) · 금동귀모양잔 등 칠기류와 일상용품, 토기류 등이 수습되었다.

154호분은 오봉산의 서봉(西峰)에서 서북쪽으로 약 500m 떨어진 곳에 자리한다. 앞방과 뒷방, 그리고 앞방 좌우에 모두 2개의 감실이 딸린 벽돌무덤이다. 봉토는 거의 남아 있지 않았고, 널길은 동북향으로 나 있다. 널길은 길이 1.48m, 안 너비 93㎝, 바깥 너비 102㎝이며, 잔존 높이는 2.26m이다. 널길의 천장 안쪽은 터널형이며 바깥쪽은 평천장이다.

앞방은 동서 3.3m, 남북 3.5m의 크기로 축조되었다. 바닥은 벽돌을 두 겹 정도 깔았다. 벽체는 3횡 1수의 방식으로 쌓아 올리면서 안으로 좁아 들어가 궁륭식구조의 천장을 이루었다. 앞방 내에는 남북 2개의 제단이 있었는데, 남부 제단은 길이 3.62m, 너비 1.88m 높이 15㎝이고, 북부 제단은 길이 3.62m, 너비 1.54m, 높이 24㎝이다.

동 · 서 · 남 · 북 4벽의 중앙에는 터널식의 문을 내었다. 남북 양쪽에는 크기와 모양, 축조 방법이 같은 2개의 감실이 있었다. 감실은 장방형 평면에 궁륭식구조의 천장을 하고 있으며, 길이 1.68m, 폭 1.68m, 높이 2.50m이다.

뒷방은 남북 3.3m, 동서 4.2m 규모로 축조하였다. 축조 방식은 앞방과 비슷하다. 뒷방에는 3개의 나무널이 남북 방향으로 놓여 있었다. 그중 중간 나무널이 잘 남아 있었는데, 구유형으로 제작되었으며 길이 2.5m, 폭 68㎝, 높이 70㎝이다.

무덤을 축조하는 데 사용된 벽돌은 길이 35㎝, 폭 16㎝, 두께 5㎝이며, 30% 정도는 측면에 능형과 대각선 문이 있었다. 묘벽을 쌓을 때 벽돌과 벽돌 사이에 기와 조각을 끼워 넣었다.

부장품은 앞방에서는 2점의 금동금구 장식의 칠반이 놓인 칠기 탁자와 백색 옹, 마구류, 칠기 부속구 등이 출토되었다. 뒷방에서는 고리자루작은칼, 청동제 쇠뇌, 칠기, 연대(硯台), 금제 장식품, 금제 못, 은제 못, 오수전(五銖錢) 등이 출토되었다. 남사리 2호분과 154호분의 축조 연대는 3세기 대 전후로 편년할 수 있다.

참고문헌

단행본

郑永振, 李东辉, 郑京日, 『平壤一帯的乐浪墓葬: 2010-2011年度发掘报告书』(香港: 香港亚洲出版社, 2014)
리순진, 김재용, 『락랑구역 일대의 고분 유적 발굴보고』(사회과학출판사, 2002)
리순진, 『평양일대 락랑무덤에 대한 연구』(도서출판 중심, 2001)
사회과학원고고학연구소, 『고고학자료집』 6(과학백과사전출판사, 19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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