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건 연대는 미상이다. 다만, 현의 서쪽 1리에 있다는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의 기록으로 보았을 때 15세기 어느 시점에 건립되었다고 판단된다. 평택향교 건립은 조선 건국 후 1읍 1교 원칙에 의해 세워진 것으로 보이며, 조선의 향교 건립은 지방 인재 양성 및 교화를 위해 시행된 것이었다.
조선 전기 평택향교의 공식적인 기록은 확인되지 않는다. 평택향교는 17세기 후반 중건되었고, 18세기 초반 이후 여러 번의 중수를 거쳤다. 평택현은 연산군 대에 잠시 경기로 옮겨졌던 것을 제외하면, 조선시대 내내 충청도에 속해 있었고, 20세기에 들어 진위군과 합쳐져 경기도에 속하게 되었다. 따라서 조선시대에 평택향교는 충청도에 속해 있는 향교였다. 20세기 들어 평택과 수원군의 일부를 진위군으로 소속시켰는데, 이때 경기도로 편입되었다. 이후 진위군이 평택군으로 개칭되면서, 평택향교는 경기도에 속하게 되었다. 현재는 경기도 평택시에 속한다.
조선은 건국 후 향교에 전답과 노비 등을 지급하고 교관을 파견해 교생들을 가르쳤고, 봄과 가을에는 석전(釋奠)을 봉행(奉行)하도록 했다. 이는 전국적으로 인재를 양성하고, 유학 이념으로서 백성들을 교화시키려 한 것이었다. 그러나 조선 후기에 들어 향교는 교육 기능이 쇠퇴했고, 그 대신 선현에 대한 제향을 통한 교화 기능을 주로 담당하게 되었다. 현재 학생 및 시민들을 대상으로 한 서예강좌, 지역의 초,중,고등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충효교육 등 여러 지역 문화 사업을 활발히 시행하고 있다. 평택향교는 1983년 경기도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