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쪽은 단천군, 서쪽은 장진군, 서남쪽은 신흥군, 남쪽은 북청군, 북쪽은 삼수군·갑산군에 접해 있다.
동경 127°35′∼128°46′, 북위 40°25′∼41°11′에 위치하며, 면적3,925.05㎢, 인구 8만10명(1944년 현재)이다. 5개 면 105개 이로 되어 있으며, 군청 소재지는 풍산면 신풍리이다.
이 군은 대체로 개마고원의 중심부에 해당되므로 평균 고도가 1,000m를 넘는다. 이 고원의 남쪽 가장자리는 바로 부전령산맥(赴戰嶺山脈)의 능선부가 되는데, 동쪽으로부터 검덕산(檢德山, 2,150m)·검덕산(劒德山, 1,684m)·희사봉(希砂峰, 2,117m) 등이 연달아 솟아 있고, 북청군과 경계에 후치령(厚峙嶺, 1,335m), 신흥군과 경계에 금패령(禁牌嶺, 1,676m)이 있어 교통의 관문이 된다.
지세는 대체로 남부가 높고 북쪽으로 낮게 경사되었다. 서부 장진군과 경계에도 두운봉(頭雲峰, 2,487m)·북수백산(北水白山, 2,522m) 등이 솟아 있고, 그 지맥이 군내에 미친다.
하천으로는 검덕산 부근에서 발원하는 남대천이 천남면의 홍군(洪君)을 거쳐 단천군으로 흘러가고, 백산에서 발원하는 웅이천(熊耳川)은 서동천(西洞川)과 합쳐 허천강(虛川江) 본류로 들어간다.
안수면명당봉(明堂峰)에서 발원하는 허천강은 이 군의 주요 수계의 기간(基幹)이 되어, 남대천을 제외한 모든 크고 작은 하천을 합류한다.
고위도이고 내륙의 고원 지대이므로 여름과 겨울, 낮과 밤의 기온 차가 심한 대륙성 기후가 뚜렷하다. 연평균 기온 2.2℃, 1월 평균 기온 -16.8℃, 8월 평균 기온 17.8℃, 연 강수량 633㎜이다.
[고 대]
이 지역의 선사 시대 유적은 아직까지 발견된 바가 없다. 인근 지역인 북청군에서 신석기 시대의 것으로 보이는 패총이 발굴되었으나, 지리적 여건상 이곳의 선사 문화 존재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하겠다.
이곳은 근대 이전까지 갑산군과 북청군에 속해 있던 지역이며, 이들 지역 또한 관계 문헌 자료가 거의 없는 상태여서 고대의 역사를 상세히 살펴볼 수가 없다.
다만 여진족이 오랫동안 웅거하였다는 것과 부여·한군현의 지배에 이어 고구려와 발해의 서경압록부(西京鴨綠府)에 차례로 영속되었다는 사실 정도가 알려지고 있을 뿐이다.
[고 려]
고려에 들어와서도 이 지역에는 오랫동안 여진족이 분산하여 거주하고 있었으며, 1356년(공민왕 5) 반원 정책을 표방하던 공민왕이 화주(和州)를 공격하여 원(元)의 쌍성총관부(雙城摠管府)를 점령하고 목(牧)을 설치하였다. 이후 계속된 북진으로 삼살(三撒)·복주(福州)·길주(吉州) 등지를 수복하였다.
1372년(공민왕 21)북청 지역은 북청주(北靑州)로 개칭하고 안무사(安撫使) 겸 만호(萬戶)가 두어졌다. 1388년(우왕 14) 이성계(李成桂)가 위화도회군으로 실권을 장악하게 되자, 그의 선조가 출생하고 오래 거주한 땅을 회복한다는 명분으로 더욱 북쪽으로 진출하였으며, 1391년(공양왕 3) 본래 허천부(虛川府)였던 곳을 갑주(甲州)라 개칭하면서 만호부(萬戶府)를 두어 다스렸다.
[조 선]
1413년(태종 13)갑주만호부를 갑산군이라 고쳤는데, 당시의 갑산군은 여연·후주·무창 등지를 포괄하는 큰 규모의 군이었다.
1416년 여연 지역이 군치(郡治)인 갑산과 너무 떨어져 있다 하여 갑산군관할의 일부를 떼어 지금의 중강진 부근에 여연군을 새로이 설치하고 이를 동북면으로부터 서북면으로 이관시키는 한편, 후주·무창 지역을 여연군으로 이속시켰다.
1417년북청주를 다시 북청으로 개명하였으며, 1430년(세종 12) 진(鎭)을 설치하면서 병마절도부사(兵馬節度副使)를 두었다.
『세종실록』 지리지에 의하면, 1432년 당시의 군사 체제는 지군사(知郡事)가 길주도좌익병마(吉州道左翼兵馬)를 겸하고 군정(軍丁)은 익속군 257인과 수성군 9인이 있었으며, 관방요해(關防要害)로 혜산구자(惠山口子)·가사동구자(家舍洞口子)·봉천대(奉川臺) 등이 있었다.
1437년에 진(鎭)을 두어 겸절제사(兼節制使)라 칭하고, 1461년(세조 7)에는 군사상 중요한 곳이라 하여 도호부로 승격시키는 한편, 갑산군에 속해 있던 삼수만호(三水萬戶)를 독립시켜 군(郡)을 삼았다. 관원으로는 종3품의 부사 1인과 종6품의 교수 1인을 두었다.
세조 때 정비된 진관 체제하에서 갑산군은 영길남도에 속하여 종3품의 병마절제사 1인을 두어 부사가 겸하고, 또 혜산진에 병마절제사 1인, 운총(雲寵)에 종4품의 병마만호(兵馬萬戶) 1인을 각각 두었다.
그 뒤 관방이 증설되어 『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혜산진에 병마첨절제사 1인, 운총보와 인차외보(因遮外堡)에 병마만호 각 1인, 동인보(同仁堡)와 진동보(鎭東堡)에 각각 권관(權管)을 두었던 것으로 나타난다.
『여지도서』를 보면, 1759년(영조 35) 현재 방리(坊里)는 읍사·허천사·호린사·웅이사·종포사·이리사·희사·동인사·운총사·혜산사·별해사·허린사·별사·진동사 등 14개 사(社)에 호수는 3,711호, 인구는 1만6574인(남자 7,583인, 여자 8,991인)이었다.
1872년(고종 9)에 편찬된 『갑산읍지』에도 14개 사로 나오며, 호수는 3,745호 인구는 3만102인(남자 1만3721인, 여자 1만6381인)이었고, 1894년(고종 31)에 편찬된 『갑산읍지』에는 호수 3,900호, 인구 3만342인으로 나오며 방리는 약간의 명칭 변동과 함께 2개의 사가 증가하여 16개의 사가 기록되어 있다.
[근 대]
갑오개혁 이듬해인 1895년 5월 지방 관제를 개혁하여 부군제를 실시하였는데, 갑산은 이때 부가 되어 그 밑에 갑산·삼수의 두 군을 두었다. 1896년갑산은 군으로 격하되어 함경남도에 속하게 되었다.
한말에 의병이 각지에서 일어날 때 홍범도(洪範圖)·송상봉(宋相鳳)·차도선(車道善) 등이 갑산을 근거지로 활약하였으나, 많은 전과에도 불구하고 응덕령전투(應德嶺戰鬪)를 고비로 상당수의 희생자를 내며 일군에게 몰려 만주로 넘어갔다.
일제 강점기에 갑산군은 몇 차례의 개편을 거쳐 행정구역이 크게 감축된다. 즉, 1914년 4월 행정구역 개편 때 갑산군의 이인면·웅이면·천남면을 중심으로 북청군의 안수면·안산면을 흡수하여 새로이 풍산군을 신설하였던 것이다. 군청 소재지는 이인면 신풍리에 두었는데 얼마 뒤에 풍산면으로 옮겼다.
이 때의 풍산군 독립은 신흥군의 신설과 맥을 같이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즉, 신흥군을 함흥군에서 독립시킴으로써 부전강 수력과 자원 개발 및 철도 건설을 촉진했던 것처럼 풍산군의 독립도 허천강 수력 건설을 촉진하였으며, 특히 이들 두 군의 수력발전소는 관북 공업 지대의 원동력이 되기도 하였다.
허천강 수력의 발전량은 당시에 33. 9만㎾에 달하였다. 하지만, 이곳의 인구를 보면 1927년에 7만2834명, 1934년에 7만7072명, 1943년에 8만5792명으로서 그 증가율이 미약하였던 것을 알 수 있다.
그것은 이 군에 거대한 수력발전소가 있기는 하였지만 전력을 다른 곳에 공급하였을 뿐, 정작 이 지역은 험한 산악 지대에다 농업과 임산업·목축업을 주업으로 하는 산업구조로 인하여 생긴 현상으로 이해된다.
1919년의 3·1만세운동 때는 이 지역 천도교구장 주병남(朱炳南) 외에 300여 명이 풍산교구에 운집하여 시위를 벌였으며, 풍산헌병분견소도 공격하는 등의 활약을 하였으나 이 과정에서 10여 명이 순국하였다. 『한국독립운동지혈사』에 의하면 집회 횟수 2회에 참가 인원수는 900여 명이었다.
이 군은 갑산군의 일부와 북청군의 일부가 병합되어 뚜렷한 유물·유적은 없다. 다만, 과거에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풍산견(豐山犬)이 유명하다.
이 군은 본래 북청군과 갑산군의 지역이었다가 1914년 풍산군으로 신설된 곳이므로 조선 시대까지의 교육은 북청군 및 갑산군의 교육기관에서 행하여졌다. 다만, 1933년의 조사에 의하면, 당시 이 군에는 9개의 서당과 1,156명의 학동이 있었다.
근대 교육기관으로는 1937년에 보성학교(普成學校) 등 8개 사립학교와 풍산공립보통학교 등 5개 공립학교가 있었다. 중등 교육기관은 없어 보통학교를 졸업하면 북청농업학교·북청직업학교·갑산농림학교 등과 함흥이나 서울의 중학교에 진학하였다.
교육 상황을 보면, 1944년 현재 초등학교 20개교와 2년제의 풍산농업보습학교가 있다. 종교 기관은 개신교 교회 8개가 있으며, 특히 천도교가 널리 보급된 편이다.
총경작지 약 4만㏊ 중 천남면의 34㏊ 정도의 논을 제외하면 모두 밭이므로, 농업 경영도 밭농사를 주로 한다. 또, 지세가 일반적으로 높으나 기복이 완만하여 화전(火田) 개간이 성행한다. 주요 농산물은 감자·귀리·아마·대마·조·보리 등인데, 특히 감자는 알이 굵고 맛이 좋기로 유명하다. 그 밖에 홉 재배와 한우 사육도 활발하다.
임업으로는 산악 지대에 침엽수림이 울창하여 목재의 산출이 많으며, 특히 풍산·홍군에서 벌채한 원목은 단풍선(端豐線) 철도를 통하여 성진 방면으로 반출된다.
임산의 부산물로 약재·꿀·들죽나무·머루 등의 채취량이 많으며, 그중 당귀·황기·대황(大黃)·백작약(白芍藥)·백지(白芷) 등의 한약재는 전국에서 가장 많이 채취한다. 광산자원은 개발이 많이 되지는 못하였으나 37개의 금·사금광구에서 연 약 30㎏을 생산하였다(1943년 현재).
허천강으로 흐르는 황수원강과 남대천을 막아 이 군에 4개소의 저수지를 만들어 여러 곳에 수로식 발전소를 건설하여 총발전용량 33만9000㎾의 전력을 생산하였다.
상업 활동은 2개의 정기 시장이 있다. 풍산면 신풍리의 풍산장에서는 주로 내륙 산물인 면·마포·소·약재 등과 동해안의 명태·소금 등의 해산물이 거래된다. 안수면 장평리에서는 황수원장이 열린다.
교통은 2등도로인 함흥∼황수원 선이 황수원에서 북청∼갑산 선과 연속되며, 북청∼갑산 선은 풍산을 거쳐 갑산에서 성진∼혜산진 선과 연결된다. 3등도로는 단천∼갑산 선, 단천∼황수원 선, 북청∼혜산진의 3선이 있다.
단풍선 철도는 단천읍에서 남대천을 따라 홍군에 이르는 75.5㎞의 광궤철도(廣軌鐵道)로 이 군에는 홍군·하홍군·포치·장파 등의 4역이 있다.
[안산면安山面]
군의 중남부에 있는 면. 면적 505.58㎢, 인구 1만2223명(1944년 현재). 면 소재지는 내중리이다. 본래 북청군에 속해 있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신설된 이 군에 속하게 되었다.
면의 동부에 희사봉·두운봉(頭雲峰, 1,622m)·추동산, 서부에 대덕산(大德山, 2,113m), 남부에 남산봉(南山峰, 1,684m)·후치령, 북부에 시성산·노룡봉(老龍峰, 1,661m)·고족봉(高足峰, 1,672m) 등의 산이 있어 전체적으로 높은 산악 지대를 이룬다.
이들 산지 사이로 황수원강이 동북류하여 허천강에 흘러들며, 지경리천(地境里川)도 풍산면과의 경계를 따라 흐르다가 허천강에 합류한다.
밭농사를 주로 하여 고랭지 내한성 농작물을 재배하는데 주요 농산물은 귀리·감자·조·옥수수 등이며, 산간에서의 화전 경작도 많다. 산지가 많아 산림자원이 풍부하지만 교통이 불편하여 목재 등의 운반이 곤란하다.
교통은 신흥군에서 금패령을 넘어오는 도로와 북청에서 후치령을 넘어오는 도로가 황수원에서 합쳐져 풍산·갑산 등지로 연결된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3개교가 있다.
내중(內中)·황수원(黃水院)·노은(老隱)·양평(楊坪)·하지경(下地境)·상지경(上地境) 등 6개 이가 있다.
[안수면安水面]
군의 서남부에 있는 면. 면적 525.85㎢, 인구 8,616명(1944년 현재). 면 소재지는 평산리이다. 본래 북청군에 속해 있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신설된 이 군에 속하게 되었다.
면의 서부에 백산·옥련산(玉連山, 2,164m)의 준령이 있고, 남부에는 명당봉(明堂峰, 1,809m)·희사봉·삼봉(三峰, 1,987m) 등의 산줄기가 있으며, 북부 및 동부는 비교적 지대가 낮다.
황수원강이 이들 산지의 계곡 사이로 북동류하다가 면의 북동부인 장평리를 중심으로 인공 저수지인 황수원호를 이룬다.
밭농사를 주로 하며 경작지는 좁고, 산간 지방에서는 원시적인 화전 경작도 많이 한다. 주요 농산물은 감자·귀리·옥수수·대마 등이다. 교통은 황수원강 계곡을 따라 신흥-금패령-풍산-갑산에 이르는 2등도로가 지난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5개교가 있다.
장평(長坪)·수동(水東)·평산(平山)·수상(水上)·감토(甘土)·미전(米田) 등 6개 이가 있다.
[웅이면熊耳面]
군의 서북부에 있는 면. 면적 1,422.46㎢, 인구 1만7452명(1944년 현재). 면 소재지는 양평리이다. 본래 갑산군의 지역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신설된 이 군에 속하게 되었다.
지형은 면의 서쪽인 갑산군 및 신흥군과의 경계에 두운봉·북수백산·백산 등이 산맥을 이루고 있으나 동쪽으로 갈수록 낮아진다. 서부의 산지에서 서동천·약수천·웅이천 등의 하천이 발원하여 동류 내지 북동류한다. 산간지대로서 경지가 적으며, 대체로 밭농사를 주로 하며 화전 경작도 많다.
주요 농산물은 감자·귀리·조·마 등이다. 넓은 면적의 원시림으로 임산자원이 풍부하지만 운반에 어려움이 있다. 교통은 북청-풍산-삼수 간의 3등도로가 면의 동단을 지나고, 웅이천·약수천·서동천 등의 하천을 따라 등외도로가 있을 뿐이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3개교가 있다.
양평(楊坪)·선흥(宣興)·응덕(鷹德)·창평(倉坪)·관평(館坪)·우가(禹哥)·평(坪)·어은(於隱)·용흥(龍興)·연두평(蓮頭坪)·석산(石山)·문조평(文藻坪)·속신(俗新)·신동장(新洞場)·도하(都下)·도상(都上)·용문(龍門)·임장(林長)·서하(西下)·서상(西上)·창후(倉後)·서(瑞)·서창(西昌)·청학(靑鶴)·삼대(三臺)·합포(合浦)·노암(櫓巖)·나흥(羅興)·약수(藥水)·용회(龍會) 등 30개 이가 있다.
[천남면川南面]
군의 동북부에 있는 면. 면적 986.05㎢, 인구 2만4257명(1944년 현재). 면 소재지는 홍군리이다. 본래 갑산군에 속해 있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신설된 이 군에 속하게 되었다.
이 면의 동부와 서부는 높고 동남부 서남부는 그다지 높지 않다. 동부에 검덕산(檢德山)·희사봉·두운봉(1,622m), 남부에 추동산(楸洞山, 1,891m), 검덕산(劍德山)·대덕산(大德山, 1,447m), 면내에 오송산(五松山)·학봉 등 1,700m 이상의 산들이 있다. 하천은 남대천이 북부의 산악 지대에서 발원하여 면의 중앙을 서남류하여 홍군에서 다시 동남 방향으로 흘러 단천군으로 들어간다.
농업은 밭농사를 주로 하며, 주요 농산물은 감자·귀리·조·보리·대마 등이다. 광대한 산간지대인 만큼 임산자원이 풍부하고 단풍선 종점인 홍군역을 이용하여 단천·성진 방면에 운반 공급된다.
교통은 단풍선이 홍군까지 연결되고, 이와 병행하여 단천-풍산-갑산 간의 3등도로가 있으며 하천을 따라 각 주요 마을에 등외도로가 연결된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5개교가 있다.
와포(瓦浦)·상장(上庄)·중장(中庄)·사(寺)·과산(果山)·백탑(白塔)·문략평(文略坪)·화덕(樺德)·쌍청보장(雙靑保庄)·음평(陰坪)·양평(陽坪)·수채(水彩)·원흥(元興)·축평(杻坪)·마토(麻土)·덕용덕(德用德)·동춘(東春)·황토보(黃土堡)·신흥덕(新興德)·어구장(於口庄)·수위(水渭)·창평(倉坪)·고암(古巖)·슬잠저(瑟岑底)·슬(瑟)·종(宗)·동대(東坮)·주로대(周路坮)·삼(杉)·금창(金倉)·통(通)·홍군(洪君)·신흥(新興)·장파(長坡)·어평(魚坪)·포치(浦淄) 등 36개 이가 있다.
[풍산면豐山面]
군의 중앙 북부에 있는 면. 면적 485.11㎢, 인구 1만7462명(1944년 현재). 면 소재지는 신풍리이다. 본래 갑산군 이인면(里仁面)의 지역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신설된 이 군에 속하게 되었으며 1942면 풍산면으로 개칭되었다.
이 면은 개마고원의 중부에 위치하는데 면의 동부에는 황토령(黃土嶺, 1,589m)과 봉수산(熢燧山, 1,401m), 서북쪽의 웅이면과 경계에 응덕산(鷹德山, 1,838m), 남쪽에 시성산(柴星山, 1,542m), 북쪽에 증봉(甑峰, 1,140m)·삼봉산(三峰山, 1,725m) 등의 능선이 뻗어 면의 경계를 이루고 있다. 하천은 허천강이 면의 동부를 북류하며, 지경리천이 남부의 안산면과의 경계를 동쪽으로 흘러 허천강에 유입된다.
농업은 내한성 농작물의 밭농사를 주로 하여 주요 농산물은 감자·귀리·조·보리·대마 등이다. 이 면은 높고 한랭한 고원 지대이므로 임산자원이 풍부하며, 북류하는 허천강을 이용하여 운반된다. 교통은 북청∼갑산 간의 2등도로와 함흥-신흥-풍산 간의 도로가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4개교가 있다.
신풍(新豐)·축암(縮巖)·장양(長陽)·토아(土雅)·신원하(新元下)·신원상(新元上)·직(直)·설학(雪鶴)·광상(廣上)·광하(廣下)·이파(梨坡)·산점덕(山店德)·원포(院浦)·줄애(茁崖)·신창(新昌)·신복(新福)·잠둔(蠶屯)·귀락(貴洛)·신하(新下)·내(內)·신명(新明)·무금(舞金)·암흥(巖興)·신흥(新興)·신덕(新德)·심포(深浦)·재리원(財利院) 등 27개 이가 있다.
이 군은 본래 함경남도에 속하여 있다가 1913년 풍산면·천남면·능귀면을 포함하고 있었으나 1952년 12월 천남면은 허천군에, 능귀면은 풍서군에 각각 편입되었다. 1954년 10월양강도가 신설될 때 이 도에 속하게 되었으며, 1990년 8월김형권군으로 개칭되었다.→김형권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