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산군 ()

대동여지도 중 함경남도 풍산 부분
대동여지도 중 함경남도 풍산 부분
인문지리
지명
양강도 남부에 있는 군.
이칭
이칭
김형권군(金亨權郡)
지명/행정지명·마을
면적
1,261.7㎢
행정구역
1읍 1구 17리
군청 소재지
김형권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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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

풍산군은 양강도 남부에 있는 군이다. 1990년 개칭되어 풍산군에서 김형권군이 되었으며, 양강도 면적의 약 9.1%를 차지한다. 김형권읍에 군 소재지를 두고 있고, 현재 1읍 1구 17리로 구성되어 있다. 풍산개의 원산지로 유명한 고장이다.

정의
양강도 남부에 있는 군.
개관

양강도 남부에 있는 군이다. 1990년 개칭되어 풍산군에서 김형권군(金亨權郡)이 되었다. 김형권군은 김일성의 친삼촌 김형권의 이름에서 유래한 지명이다. 북한에서 김형권은 항일투사이자 북한 정권을 세운 혁명열사로 크게 대우하고 있다. 2003년 현재 김형권군의 행정구역은 1읍 1구 17리로 구성되어 있다. 군 소재지는 김형권읍이다. 김형권군의 동서 간 길이는 39㎞, 남북 간 길이는 36㎞이며, 면적은 약 1,261.7㎢이다. 도 전체 면적의 약 9.1%를 차지한다.

자연환경

개마고원 남부에 해당하는 해발 1,300m 안팎의 높고 평평한 고원지대이다. 황수원등판, 양편등판, 원포등판 등이 펼쳐져 있다. 지형은 남서부가 높고 북동쪽으로 갈수록 점차 낮게 경사된다. 북수백산(北水白山) 줄기에 백산(白山: 2,377m)이 솟아있고, 그 주변으로 검덕산(檢德山: 2,150m), 희사봉(希砂峰: 2,117m), 대덕산(大德山: 2,113m) 등 높은 산이 있다.

하천으로는 검덕산 부근에서 발원하는 남대천이 천남면의 홍군(洪君)을 거쳐 단천군으로 흘러가고, 백산에서 발원하는 웅이천(熊耳川)은 서동천(西洞川)과 합쳐 허천강(虛川江) 본류로 들어간다. 기본 수계는 압록강의 지류인 허천강이다.

우리나라에서 일조율이 가장 높은 지역 중에 하나이다. 산림은 김형권군의 약 88%를 차지하며, 대부분 침엽수림으로 구성되어 있다. 지하자원이 풍부한데, 내중리와 평산리에 금, 리포리와 신원리에 철, 신원리에 흑연, 지경리에 니켈 등이 매장되어 있다.

내륙의 고원지대로 고위도이며, 여름과 겨울, 낮과 밤의 기온 차가 심한 대륙성 기후이다. 연평균 기온 1.5℃, 1월 평균기온 -17℃, 8월 평균기온 17.8℃, 연 강수량 667.4㎜이다. 연 최대 강수량은 953.8㎜, 연 최소 강수량은 381.4㎜이다.

역사

고대

이 지역에서 선사시대 유적은 아직 발견된 바 없다. 인근 지역인 북청군에서 신석기시대의 것으로 보이는 패총이 발굴되었으나, 지리적 여건상 이곳의 선사 문화 존재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하겠다. 삼국시대에는 고구려의 영토였으며, 이후 발해의 서경압록부(西京鴨綠府)에 영속되었다. 발해 패망 이후로는 이 지역에 여진족이 거주하였다.

고려

고려에 들어와서도 이 지역에는 오랫동안 여진족이 분산하여 거주하고 있었다. 1356년(공민왕 5)에 이르러 반원 정책을 표방하던 공민왕이 화주(和州)를 공격하여 원(元)의 쌍성총관부(雙城摠管府)를 점령하고 목(牧)을 설치하였다. 이후 계속된 북진으로 삼살(三撒) · 복주(福州) · 길주(吉州) 등지를 수복하였다.

1372년(공민왕 21) 북청 지역이 북청주(北靑州)로 개칭되고, 안무사(安撫使) 겸 만호(萬戶)가 두어졌다. 이후 1388년(우왕 14) 이성계(李成桂)위화도회군으로 실권을 장악하게 되자, 그의 선조가 출생하고 오래 거주한 땅을 회복한다는 명분으로 더욱 북쪽으로 진출하였다. 1391년(공양왕 3)에는 본래 허천부(虛川府)였던 곳을 갑주(甲州)라 개칭하고, 만호부(萬戶府)를 두어 다스렸다.

조선

1413년(태종 13) 갑주만호부를 갑산군으로 고쳤는데, 당시의 갑산군은 여연 · 후주 · 무창 등지를 포괄하는 큰 규모의 군이었다. 1416년 여연 지역이 군치(郡治)인 갑산과 너무 떨어져 있다 하여 갑산군 관할의 일부를 떼어 지금의 중강진 부근에 새로이 여연군을 설치하고, 동북면에서 서북면으로 이관하였다. 그리고 후주 · 무창 지역을 여연군으로 이속하였다.

1417년 북청주를 다시 북청으로 개명하였으며, 1430년(세종 12) 진(鎭)을 설치하면서 병마절도부사(兵馬節度副使)를 두었다. 『세종실록지리지』에 의하면, 1432년 당시의 군사 체제는 지군사(知郡事)가 길주도좌익병마(吉州道左翼兵馬)를 겸하였고, 군정(軍丁)은 익속군 257인과 수성군 9인이 있었다. 관방요해(關防要害)로는 혜산구자(惠山口子) · 가사동구자(家舍洞口子) · 봉천대(奉川臺) 등이 있었다. 1437년에는 진(鎭)을 두어 겸절제사(兼節制使)라 칭하였다.

1461년(세조 7) 군사상 중요한 곳이라 하여 도호부로 승격시키는 한편, 갑산군에 속해 있던 삼수만호(三水萬戶)를 독립시켜 군(郡)으로 삼았다. 관원으로는 종3품의 부사 1인과 종6품의 교수 1인을 두었다. 세조 때 정비된 진관체제하에서 갑산군은 영길남도에 속하였으며, 종3품의 병마절제사 1인을 부사가 겸하였다. 또 혜산진에 병마절제사 1인, 운총(雲寵)에 종4품의 병마만호(兵馬萬戶) 1인을 각각 두었다. 『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그 뒤 혜산진에 병마첨절제사 1인, 운총보와 인차외보(因遮外堡)에 병마만호 각 1인, 동인보(同仁堡)와 진동보(鎭東堡)에 각각 권관(權管)을 두었다.

『여지도서』를 보면, 1759년(영조 35) 당시 방리(坊里)는 읍사 · 허천사 · 호린사 · 웅이사 · 종포사 · 이리사 · 희사 · 동인사 · 운총사 · 혜산사 · 별해사 · 허린사 · 별사 · 진동사 등 14개 사(社)에 호수는 3,711호, 인구는 1만 6,574명[남자 7,583명, 여자 8,991명]이었다.

1872년(고종 9)에 편찬된 『갑산읍지』에도 14개 사로 나오며, 호수는 3,745호 인구는 3만 102명[남자 1만 3,721명, 여자 1만 6,381명]이었다. 1894년(고종 31)에 편찬된 『갑산읍지』에는 호수 3,900호, 인구 3만 342명으로 나오며, 방리는 약간의 명칭 변동과 함께 2개의 사가 증가하여 16개 사가 기록되었다.

근대

갑오개혁 이듬해인 1895년 5월 지방 관제를 개혁하여 23부제를 실시하였는데, 갑산은 이때 부가 되어 그 밑에 갑산 · 삼수 두 군을 두었다. 1896년 23부제가 폐지되면서 갑산은 다시 군이 되었고, 함경남도에 속하게 되었다.

한말에 의병이 각지에서 일어날 때 홍범도(洪範圖) · 송상봉(宋相鳳) · 차도선(車道善) 등이 갑산을 근거지로 활약하였다. 하지만 많은 전과에도 불구하고 응덕령전투(應德嶺戰鬪)를 고비로 상당수의 희생자를 내고 일군에게 몰려 만주로 넘어갔다.

일제강점기에 갑산군은 몇 차례의 개편을 거치며 행정구역이 크게 감축되었다. 1914년 4월 행정구역 개편 때 갑산군의 이인면 · 웅이면 · 천남면을 중심으로 북청군의 안수면 · 안산면을 흡수하여 풍산군이 신설되었다. 풍산군은 당시 풍년촌의 풍과 갑산군의 산에서 따온 지명이다. 군청 소재지는 이인면 신풍리에 두었는데, 얼마 뒤에 풍산면으로 옮겼다.

이때의 풍산군 독립은 신흥군의 신설과 맥을 같이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즉, 신흥군을 함흥군에서 독립시킴으로써 부전강 수력과 자원 개발 및 철도 건설을 촉진했던 것처럼 풍산군의 독립도 허천강 수력 건설을 촉진하였다. 이들 두 군의 수력발전소는 관북 공업지대의 원동력이 되기도 하였다.

허천강수력발전소의 발전량은 당시에 33.9만㎾에 달하였다. 하지만 이곳의 인구를 보면, 1927년에 7만 2,834명, 1934년에 7만 7,072명, 1943년에 8만 5,792명으로, 증가율이 미약하였던 것을 알 수 있다. 그것은 이 군의 수력발전소가 다른 곳에 전력을 공급하였을 뿐, 정작 이 지역은 험한 산악 지대여서 농업과 임산업 · 목축업을 주업으로 하는 산업구조에 머물렀기 때문에 생긴 현상으로 이해된다. 1934년에는 이인면이 풍산면으로 개칭되었다.

1919년 3·1만세운동 때는 이 지역 천도교구장 주병남(朱炳南)을 비롯한 300여 명이 풍산교구에 운집하여 시위를 벌였다. 풍산헌병분견소를 공격하는 등의 활약을 하였으나, 이 과정에서 10여 명이 순국하였다. 『한국독립운동지혈사』에 의하면 집회 횟수 2회에 참가 인원수는 900여 명이었다.

현황

1952년 군면리 대폐합에 따라서 1읍 19리가 되었다. 1954년 양강도 풍산군이 되었고, 1961년에는 수상리가 편입되면서 1읍 118리가 되었다. 1983년에는 평산리가 평산로동자구로 승격하였다. 1990년 풍산군은 양강도 김형권군으로 개칭되었고, 2003년 현재 1읍 1구 17리를 유지하고 있다.

유물 · 유적

풍산개

풍산개는 북한의 「국가상징법」에 명시된 북한의 국견으로, "언제나 대바르고 용감하여 담차고 날랜 조선사람의 기질"을 상징한다. 김형권군은 풍산개의 원산지이다. 북한에서는 '조선의 국견 풍산개품평회'를 통해 풍산개의 등록조사와 품종평가사업을 진행하고 출품증서 등을 수여하고 있다. 북한은 2018년 남북정상회담을 기념하여 풍산개 한 쌍을 선물한 바 있다.

풍산왜가리번식지

풍산왜가리번식지는 김형권군 광덕리 밀림 속에 있는 북한의 천연기념물 제462호이다. 북한에서 유일한 왜가리 번식지로, 1983년부터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왜가리들은 봄철에 날아와 5~6월에 둥지를 틀고, 6~7월에 새끼를 친 후 가을이 되면 날아간다.

야생특산식물

김형권군에는 노란뚜깔나무[노란만병초], 눈사초, 벌종비나무[벌종비], 북노루발풀[호노루발풀], 북사초, 큰껍질쌀새[큰껍질새], 풍산가문비나무 등 야생특산식물이 자란다.

교육 · 문화

북한 매체에 따르면, 김형권군에는 매령고급중학교 작수동분교, 함흥수리동력대학 관개학부 김형권군, 김형권군 수동중학교, 풍산고급중학교, 풍산초급중학교, 리인모소학교가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군에는 전반적으로 80여 개의 탁아소, 60여 개의 유치원, 27개의 소학교, 24개의 중학교, 1개의 전문학교 등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민요

전승되는 민요로는 「시집살이」가 있다. 가사는 다음과 같다. 고산준령 높다한들 고산준령 높다한들 / 시아버니보다 높을소냐 / 레레뚤레 레뚤레렐레 / 레레뚤레 레뚤레렐레 바닷물이 검푸른들 바닷물이 검푸른들 / 시어머니처럼 검푸르랴 / 레레뚤레 레뚤레렐레 외나무다리 어렵다면 외나무다리 어렵다면 / 시아주버니처럼 어려우랴 / 레레뚤레 레뚤레렐레

산업 · 교통

산업

주요 공업은 방직, 피복공업, 광업, 건재공업, 임업 등이다. 이 중 방직 및 피복공업의 생산액이 김형권군 공업 생산액의 29.3%이다. 광업은 군 공업의 17.3%, 식료공업 생산액은 16.7%이다. 임업은 군 공업 생산액의 7.7%이다. 군의 주요 기업으로 신원광산, 김형권군목재일용품공장, 김형권군군민발전소, 김형권군건재공장, 김형권군아마공장 등이 있다. 김형권군림산사업소에서는 광산용 주1를 생산한다. 김형권군은 수력발전에 수자원의 87%를 이용한다. 2004년 11월 제410호군민발전소가 준공되었다.

개마고원에 위치하여 고지대 농업이 발달하였다. 농경지의 90% 이상이 해발 1,100m 이상이다. 감자를 46.42%로 가장 많이 파종하고, 밀, 보라콩 등을 많이 심는다. 각 리에는 협동농장이 있다. 축산업으로는 65.7%가 양을 사육하고, 이외에 소, 돼지, 닭 등을 사육한다.

교통

혜산북청 간 1급도로가 통과한다. 김형권읍부전 간 도로가 개설되어 있으며, 김형권읍과 군내 여러 지역을 연결하는 도로망이 구축되어 있다.

읍·면

김형권읍(金亨權邑)

양강도 김형권군의 1읍 1구 17리 중 1읍. 김형권군의 북쪽에 있는 읍으로, 1990년 풍산읍이 김형권읍으로 개칭되었다. 김형권군 소재지이다. 북부에는 까치봉이 있으며, 남부는 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풍산천이 동쪽으로 흐르고 있다.

평산로동자구(平山勞動者區)

양강도 김형권군의 1읍 1구 17리 중 1구. 과거 함경남도 북청군 안산면의 평부근과 대산리를 병합하여 안산면에 신설한 리로, 평산리로 불렸다. 1914년 풍산군 안수면 평산리로 개칭되었고, 1952년 군면리가 통폐합되면서 풍산군 평산리가 되었다. 이후 1983년 풍산군 평산로동자구로 승격되었다가, 1990년 풍산군이 김형권군으로 개칭되면서 김형권군 평산로동자구가 되었다.

광덕리(廣德理)

양강도 김형권군의 북동쪽에 위치한다. 1952년 풍산군 광덕리로 개편되었다가 1990년 김형권군 광덕리가 되었다. 광덕리는 개마고원 남동부에 위치하여 평균 해발 1,100m의 높은 산들이 솟아있다. 지하자원으로 자철광의 매장량이 높다. 산림이 광덕리 전체 면적의 94%를 차지하고 있으며, 농경지는 약 3%에 불과하다. 광덕협동농장과 풍산개목장 등이 있다.

내중리(內中里)

양강도 김형권군의 남동쪽에 위치한다. 조선 말에 함경남도 북청군 안산면의 내포리와 중리를 병합하여 신설한 리로, 내중리라 하였다. 1914년 풍산군 안산면 내중리로 개편되었고, 1949년 행정구역 개편 때 안산면 내응리에 편입되었다. 1952년 풍산군 내중리가 되었다가 1990년 양강도 김형권군 내중리가 되었다. 내중리는 장진산[1,759m] 등 높은 산들이 병풍처럼 두르고 있으며, 리 전체 면적의 96%를 산림이 차지하고 있다. 내중협동농장이 있다.

동흥리(東興里)

양강도 김형권군의 동쪽에 위치한다. 광복 직후에 신설한 리로, 동흥리라 하였다. 전체 면적의 95%가 산림이며, 약 3%가 농경지로 이루어져 있다. 동흥리의 특산품은 감자로, 고원 환경에서 자라 맛이 독특하기로 유명하다. 동흥협동농장이 있다.

로은리(老隱里)

양강도 김형권군의 남쪽에 위치한다. 늙은 사람이 벼슬살이를 마무리하고, 산 좋고 물 좋은 이 지역에서 여생을 보냈다 하여 로은리가 되었다. 전체 면적의 5%가 농경지로, 주로 감자를 재배한다. 로은협동농장이 있다.

리포리(梨浦里)

양강도 김형권군의 북동쪽에 위치한다. 1952년 군면리 통폐합으로 풍산면의 리덕리와 원포리를 병합하여 리포리가 되었다. 전체 면적의 95% 이상이 산림으로, 축산업이 발달하였다. 산림 면적의 약 30%가 양 방목지로 이용되고 있다. 리포협동농장이 있다.

미감리(米甘里)

양강도 김형권군의 남쪽에 위치한다. 1952년 군면리 통폐합으로 풍산군 안수면의 미전리와 감토리를 통합하여 미감리가 신설되었다. 개마고원의 남부에 위치하여 평균 해발이 1,300m 이상이다. 전체 면적의 94.6%가 산림이며, 5.4%가 농경지이다. 미감협동농장이 있으며, 김형권군림산사업소 산하 미감림산작업소 등이 있다.

사아리(士雅里)

양강도 김형권군의 북서쪽에 위치한다. 이 지역은 과거 함경남도 갑산군 리인면 지역으로, 청렴한 선비가 살던 마을이라는 뜻에서 사아리라 불렸다. 개마고원에 속해 있지만, 오랜 세월의 침식으로 고원의 특징보다는 깊은 골짜기와 등판이 많다. 매박골, 자문골, 원골 등 11개의 골짜기가 있으며, 리 전체 면적의 95%가 산림이다.

수동리(水東里)

양강도 김형권군의 남서쪽에 위치한다. 이 지역은 과거 함경남도 북청군 안산면 지역으로, 황수원강의 동쪽에 위치하여 수동리라 불렸다. 남쪽 경계에 부전령산줄기가 있어서 높은 산과 높은 령이 많다. 전체 면적의 60%가 산림이고, 축산업이 발달하여 전체 면적의 약 19%가 방목지로 활용되고 있다. 수동협동농장이 있다.

신원리(新元里)

양강도 김형권군의 북서쪽에 위치한다. 광복 직후에 함경남도 풍산군 풍산면의 신원상리와 신원하리를 통합하여 신설되었다. 1949년 행정구역 개편 때 다시 신원상리와 신원하리로 분리되기도 하였으나, 1954년에 다시 신원리로 통합되었다. 전체 면적의 90%는 산림이며, 8%가 농경지이다. 신원협동농장, 양강도 김형권군림산사업소 산하 신원조림작업소가 있다.

양평리(陽坪里)

양강도 김형권군의 북동쪽에 위치한다. 양평리는 햇빛이 잘 드는 벌마을이라는 뜻에서 지명이 유래하였다. 1914년 안산면의 내중리 일부가 양평리에 편입되었고, 광복 직후에는 양평리의 일부 지역이 분리되어 장안리가 신설되었다. 1952년 군면리 대통합 과정에서 안산면의 장안리 일부와 병합되었다. 전체 면적의 약 88%가 산림이며, 약 10%가 농경지로 구성되어 있다. 사초평저수지가 있어서 산천어, 열목어 등 많은 어류가 서식하고 있다. 축산업이 발달하였고, 양평협동농장이 있다.

장안리(長安里)

양강도 김형권군의 동쪽에 위치한다. 광복 직후에 앙평리의 일부에서 분리되어 신설된 지역으로, 장동과 안포동의 이름을 따서 장안리가 되었다. 전체 면적의 약 90%가 산림이며, 농경지는 9%를 차지한다. 남동쪽 동흥리와의 경계에 두운봉, 동쪽에 보깨봉 등 높은 산들이 있다. 장안협동농장이 있다.

장평리(長坪里)

양강도 김형권군의 서쪽에 위치한다. 장평리는 본래 함경남도 북청군 안산면에 속한 지역으로, 긴 벌이 있는 마을이라는 의미에서 장평리가 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당시 안수면 장평리가 되었으며, 광복 직후에 안수면 장평리의 일부 지역을 분리하여 안수면에 장령리를 신설하였다. 1952년 군면리 통폐합 때 다시 안수면 장령리와 병합하여 풍산군 장평리로 개편되었다. 전체 면적의 90%는 산림이고, 농경지는 약 9%이다. 서쪽 경계에는 매덕령산줄기가 있고, 북쪽에는 1,882m의 장령산이 있다. 장평협동농장이 있다.

지경리(地境里)

양강도 김형권군 중부에 위치한다. 1952년에 풍산군 안산면의 중지경리와 상지경리가 통합되면서 풍산군에 신설된 지역으로, 북청부와 갑산부의 경계에 위치한다. 풍산고원의 남부에 위치하여 기대봉, 대덕산, 보깨봉, 봉수봉 등 높은 산이 많다. 전체 면적의 92%는 산림이며, 5%는 농경지로 구성되어 있다. 지경협동농장이 있다.

직설리(直雪里)

양강도 김형권군 북쪽에 위치한다. 광복 직후에 신설된 리로, 풍산면의 직리와 설학리가 병합된 지역이다. 직리와 설학리의 지역명을 따서 직설리가 되었다. 풍산고원의 남부에 위치하며, 매덕령산줄기가 리의 북부 경계에 뻗어 있다. 관흥리와의 경계에 매덕령, 응덕산[1,835m] 등이 솟아 있다. 전체 면적의 82%가 산림인데, 김형권군의 다른 리에 비하면 산림의 비중이 작다. 농경지는 리의 약 14% 면적을 차지하며, 감자와 보리가 주요 작물이다. 직설협동농장이 있다.

파발리(擺撥里)

양강도 김형권군의 중부에 위치한다. 광복 직후 함경남도 풍산군 안산면에 신설한 리로, 안산면 내중리의 일부가 분리된 곳이다. 조선시대에 파발꾼이 쉬어가던 역참이 있어서 파발리가 되었다. 1949년 파발리의 일부가 안산면 내응리에 편입되었다. 1952년에는 다시 안산면 내응리 일부와 통합하여 풍산군 파발리로 개편되었다. 1990년 양강도 김형권군 파발리가 되었다. 산간지대로, 희사봉이 동쪽 경계에, 발덕산이 북서쪽 경계에 있다. 파발협동농장이 있다.

하지경리(下地境里)

양강도 김형권군의 북동쪽에 위치한다. 본래 함경남도 북청군 안산면에 속하였으며, 원 북청부와 갑산부의 아래에 있는 마을이라는 의미로 하지경리가 되었다. 광복 직후 상지경리의 일부 지역과 하지경리의 일부 지역을 병합하여 중지경리가 신설되었다. 1952년에는 풍산면의 장암리와 광덕리의 일부를 통합하여 풍산군 하지경리가 되었다. 1990년에 양강도 김형권군 하지경리가 되었다. 리 전체 면적의 83%가 산림이며, 농경지는 5%에 불과하다. 하지경협동농장이 있다.

황수원리(潢水院里)

양강도 김형권군의 중부에 위치한다. 본래 함경남도 북청군 안산면에 속하였으며, 누런 개울을 낀 덕마을이라는 의미로 황수원리라 하였다. 황수원저수지가 있는데, 허천강 상류에 위치한 발전용 저수지이다. 리 전체 면적의 76%가 산림이며, 농경지는 21%로 김형권군 내에서 가장 넓다. 황수원협동농장이 있다.

참고문헌

단행본

『북한법령집 2024』(국가정보원, 2024)
『조선향토대백과 16: 량강도』(과학백과사전출판사, 평화문제연구소, 2004)

신문·잡지 기사

「조선의 국견 풍산개품평회 량강도에서 진행」(『노동신문』, 2022. 12. 14.)
「오늘도 울려오는 파발리의 총소리」(『노동신문』, 2005. 11. 3.)
「김형권군에 제410호군민발전소가 새로 건설되여 준공하였다」(『노동신문』, 2004. 11. 21.)

인터넷 자료

주석
주1

‘갱목’의 북한어. 우리말샘

관련 미디어 (2)
집필자
황주희(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 부연구위원, 북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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