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동향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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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동향교
하동향교
유적
문화재
경상남도 하동군 하동읍에 있는 조선시대에 창건된 향교. 교육시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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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경상남도 하동군 하동읍에 있는 조선시대에 창건된 향교. 교육시설.
역사적 변천

1983년 경상남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1415년(태종 15)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배향하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지금의 고전면 고하리에 창건되었다. 1593년 임진왜란 때 전부 불에 타 사라진 것을 1603년 때 이경호가 다시 중건하였다. 1730년(영조 6)에 부사 정덕명(鄭德鳴)이 횡보면 내기동에서 진답면 나동 성전골로 대성전(大成殿)만을 이건하였고, 1736년에 부사 민진기(閔鎭箕)가 횡천(橫川)으로부터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 그 뒤 1744년 부사 전천상(田天祥)이 나동의 문묘를 현 위치로 옮겨와 향교의 모습을 제대로 갖추게 되었다. 1847년(헌종 13)과 1920년에 각각 중수하였고, 6·25전쟁 때 소실되었던 풍화루(風化樓)를 1966년에 전교(典校) 남상수(南相洙)의 주간으로 현대식 건물로 재건하였고 서재도 1984년에 다시 지었다.

정조 때에 공진필(孔晉弼)이 중국에 가서 성묘(聖廟)의 제기와 제복의 제작을 모방하여 돌아왔고 서적 3,000권과 답(畓)을 기증하였다.

내용

현존하는 건물은 6칸의 대성전, 각 5칸의 동무(東廡)와 서무(西廡), 7칸의 명륜당, 7칸의 동재(東齋)·중문(中門)·제기고(祭器庫), 4칸의 풍화루 등이 있다. 대성전에는 5성(五聖), 송조2현(宋朝二賢), 우리나라 18현(十八賢)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건축형태는 낮은 터에는 풍화루(風化樓), 동재(東齋)·서재(西齋), 명륜당(明倫堂)이, 뒤쪽 높은 터에는 내삼문(內三門)과 문대성전(大成殿), 동무·서무가 자리 잡고 있는 전학후묘(前學後廟)의 배치를 이룬다.

조선시대에는 국가에서 토지와 전적, 노비 등을 지급받아 교관 1명이 정원 30명의 교생을 가르쳤으나, 조선 후기 이래 향교는 교육 기능이 쇠퇴하고 대신 선현에 대한 제향을 통한 교화 기능을 주로 담당하였다. 봄·가을에 석전(釋奠: 공자에게 드리는 제사)을 봉행하며, 초하루·보름에는 분향을 하고 있다.

다른 항교보다 많은 전적을 보관하고 있는데, 소장 전적 가운데 『하동향안세계원류(河東鄕案世系源流)』, 『하동유안병청금안합편(河東儒案幷靑衿案合編)』, 『속수하동향안(續修河東鄕案)』 등은 이 지역 향토사 연구의 귀중한 자료이다. 현재 향교의 운영은 전교 1명과 장의(掌議) 여러 명이 담당하고 있다.

참고문헌

『태학지(太學志)』
『문화유적총람』(문화재관리국, 1977)
집필자
김호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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