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하운봉」은 조선 후기까지 연주되었던 고려 전래의 당악이다. 『고려사』 악지에 산사로 가사만 수록되어 전하며, 작자는 북송대의 유영이다. 가사는 전단·후단을 갖춘 쌍조 91자에 전단·후단이 각각 8구 5평운으로 이루어졌다. 고려시대의 명칭은 「하운봉만」으로, 곡이름에 붙은 ‘만’자는 이 곡이 곡조가 길고 박자가 느린 사악임을 나타낸다. 조선 태종대에 「하운봉」 가락에 ‘어리’의 시를 배합하여 시악화 되었고, 곡이름도 「하운봉」으로 바뀌었다. 이후 조선 후기까지 내내 연례악으로 활용되어 왔으나 현재 실전되어 연주되지 않고 있다.
정의
조선 후기까지 연주되었던 고려 전래의 당악.
전승 과정
조선시대로 접어들어 1402년(태종 2)에 예조와 의례상제조가 함께 의논하여 올린 악곡들 가운데 「하운봉」이 포함되어 있다. 당시 임금이 사신을 위하여 베푸는 잔치 음악[국왕연사신악(國王宴使臣樂)]에서 두 번째 탕(湯)을 올릴 때[진이도탕(進二度湯)] 「하운봉」 가락[夏雲峯調]에 맞추어 ‘어리(魚麗)’의 시를 노래 부르도록 하였다. 이 때 이미 고려 전래의 「하운봉」은 가사가 ‘송사(宋詞)’에서 ‘시악(詩樂)’으로 바뀌었고, 곡이름도 「하운봉만」에서 ‘만’자가 빠진 「하운봉」으로 바뀌었다. 이는 결과적으로 고려시대의 ‘사악(詞樂)’ 「하운봉만」이 ‘시악(詩樂)’ 「하운봉」으로 전환되었음을 의미한다. 이후 성종대의 『경국대전(經國大典)』에서도 당악 악공을 뽑는 취재곡목에 「하운봉」이라는 곡이름으로 기재되었다.
이후로도 「하운봉」은 잔치 음악으로 줄곧 활용되었는데 정조대에는 「청평악(淸平樂)」을 제외한 모든 고려 전래의 당악곡에 ‘~곡’자를 붙임으로써 「하운봉곡(夏雲峯曲)」이라 칭하기도 하였고, 순조대에는 「하운봉지악(夏雲峯之樂)」이라 칭하기도 하였다. 이와 같이 「하운봉」은 조선조 내내 잔치 음악으로 활용되어 왔으나 이후로 실전되어 현재 연주되지 않고 있다.
구성 및 형식
일반적으로 사(詞)는 단조(短調)[홑단], 쌍조(雙調)[전단과 후단 두 단으로 구성], 삼~사첩(三~四疊)[3단 혹은 4단으로 구성]에 관계없이 전체 글자 수에 따라 58자 이내를 소령(小令), 59자~90자를 중조(中調), 91자 이상을 장조(長調)로 구분하는데, 대체로 ‘만’은 자수가 많은 장조와 결합된다. 「하운봉」은 전단 · 후단을 합쳐 총 91자라는 점에서 장조에 속하며, ‘만’의 속도로 노래하기 때문에 연주 시간이 제법 긴 악곡에 속한다.
내용
> 후단 > 월아란태혜심(越娥蘭態蕙心)[월(越)나라의 미녀가 난초 같은 자태와 혜초 같은 마음씨로] > 정요염 니환요총난금(呈妖豔 泥歡邀寵難禁)[요염함을 자랑하면서 환락으로 얽어매고 총애를 구함을 막기 어렵네] > 연상소가한발 석리교침(筵上笑歌閒發 舃履交侵)[좌석에서는 웃음과 노래 소리가 간간이 일어나고 신발들이 서로 엇갈리네] > 취향귀처 수진흥 만작고금(醉鄕歸處 須盡興 滿酌高唫)[돌아갈 곳이 취향(醉鄕)이니 모름지기 잔을 채워 높이 읊조려 흥을 다하시라) > 향차면 명강리쇄 허비광음(向此免 名韁利鎖 虛費光陰)[이제부터는 면하리니 명예와 이록(利祿)에 얽매여 세월을 헛되이 보내는 것을]
참고문헌
원전
- 『경국대전(經國大典)』
- 『고려사(高麗史)』
- 『태종실록(太宗實錄)』
단행본
- 차주환, 『고려사악지』(을유문화사, 1976)
- 陶尔夫, 诸葛忆兵, 『북송사사(北宋词史)』(北方文艺出版社, 2019)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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