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이 92.4㎝, 입지름 8.5㎝. 용뉴(龍鈕)는 n자형으로 새의 부리처럼 길게 되어 있으며, 왼쪽 앞발은 전체가 결손되었고 오른쪽 앞발은 선단(先端)이 손실되었다. 음통(音筒)의 표면은 앙련판(仰蓮瓣)과 복련판(覆蓮瓣)을 6단(段)으로 장식하였다. 어깨 부분의 입상문(笠狀文)은 연판을 연속하여 둘렀다.
상대(上帶)는 상하 둘레에 연주문을 장식하고 내면에는 원상(圓狀)의 무늬를 연속시킨 것인데, 그 무늬는 선형(旋形)·사엽화형(四葉花形) 등이며 그 둥근 무늬 사이에 당초덩굴로 연속무늬를 이루었다. 상대 밑변에 붙여서 4개소에 연곽(蓮廓)이 설치되었다. 연곽대(蓮廓帶)는 양쪽 가에 연주문 장식이 있고 그 안에는 S자형 당초문으로 채워졌다. 연곽 안에는 각기 9개의 연뢰가 연화좌(蓮花座) 가운데 작게 표현되었다.
종의 몸체 하단에 2개의 당좌(撞座)가 각기 앞뒤에 배치되었고, 그 양 옆면에는 비천상이 양주(陽鑄)되었다. 이 종의 상대와 연곽·당좌·비천상 등은 태평6년명(太平六年銘) 혜일사종(惠日寺鐘)과 같은 양상을 보이고 있어, 이 두 종이 같은 거푸집을 사용하여 제작된 것으로 생각된다. 하대(下帶)는 상대에 비하여 훨씬 넓게 구성되었다. 상하에 연주문장식이 돌려졌는데, 아래에는 두 줄로 장식되어 있고, 내면에는 당초형의 운문(雲文)이 채워졌다.
원명(原銘)은 비천상과 당좌 사이에 하대와 접하여 단책형곽(短冊形廓)을 18. 5×3. 6㎝의 크기로 설치하고, 그 안에 2행으로 돋을새김하여 주조하였다. 그 내용은 “太平十年十二月日寺棟梁元廉節□靑金鐘 入三百斤長二尺四寸二□(태평10년12월일사동량원렴절□청금종 입3백근장2척4촌2□)”인데, ‘태평10년’의 ‘태평’은 요(遼)나라 성종(聖宗)의 연호이므로, 고려 현종 21년(1030)에 해당된다. 이 명문 외에 그 상부 연곽 사이에 추각명(追刻銘)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