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전기부터 전하는 향악정재(鄕樂呈才)의 하나로, 학무의 내용은 조선전기의 문헌에 전해지지만, 고려시대 「연화대」에 연꽃에서 동녀(童女)가 나온다는 대목을 통해 그 이전부터 추어진 것임을 알 수 있다.
『악학궤범』 권5의 무보(舞譜)에 의하면, 연못을 상징하여 꾸민 지당판(池塘板)을 만들어 그 주위에 연꽃과 잎사귀를 꽂고, 꽃병 7개에는 모란꽃을 꽂아 돌려놓고, 전면에 칠보등롱(七寶燈籠)을 달아놓는다. 앞쪽 좌우에는 큰 연화통(蓮花筒)을 만들어놓고, 그 연통 속에 미리 동녀를 숨겨놓은 다음, 청학(靑鶴)과 백학(白鶴)의 탈을 쓰고 춤을 춘다.
두 학은 연통을 중심으로 몸을 흔들기도 하고(振身), 부리[觜]를 맞추는 시늉(鼓觜), 부리를 땅에 씻는 시늉(拭地), 목을 쳐들고 부리를 놀리며 벌레를 삼키는 시늉(擧首鼓觜) 등 학의 가지가지 동작을 하며 연통 안팎으로 돌다가 연통을 쪼아 연통이 벌어지면서 그 속에 숨어 있던 두 동녀가 나온다. 두 학은 이를 보고 놀라 뛰어나가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1893년(고종 30)의 『정재무도홀기(呈才舞圖笏記)』에는 청학과 백학이 청학과 황학(黃鶴)으로 그 빛깔이 달라졌을 뿐, 춤추는 내용은 『악학궤범』의 내용과 같다. 이 춤의 반주로 쓰이는 음악은 「보허자령(步虛子令)」 한 곡에 맞추어 추다가 고종 무렵에는 향당교주(鄕唐交奏)로 바뀌었다.
『악학궤범』 권8에 의하면 학의 의물(儀物)을 만드는 제도는 학은 청학과 백학 각 하나씩으로 몸 거죽은 대[竹]로 만들어 종이를 바르고 목은 둥그렇게 대를 말아 엮고, 거죽은 백포(白布), 내경(內頸)은 긴 나무를 쓴다. 또, 숙승(熟繩)을 써서 아래 주둥이에 매달아 이것으로써 흔들어 돌아보고 쪼는 형상을 짓는다. 백당안(白唐雁) 날개를 붙이는데 청학은 청칠(靑漆)을 한 날개를 붙인다. 날개는 관(鸛 : 학의 일종)의 날개 털을 쓰고, 꼬리는 검은 닭 꼬리를 쓰고, 푸른 주둥이를 가진다. 청학은 초록 주둥이다.
두 무릎에는 붉은 치마, 붉은 버선, 붉은 나무발을 입고 신는다. 청학은 푸른 치마, 푸른 버선, 초록 나무발이다. 또, 백포를 썰어 배 밑으로 늘어뜨려 오금[膝]을 가리고(청학은 청포), 가슴 앞과 두 날개 밑으로 조그마한 구멍을 두어 엿보게 한다. 1877년의 『진작의궤』 및 『진찬의궤』에 의하면 정재여령(呈才女伶)의 복식은 청황고말(靑黃袴襪)을 입는 것으로 되어 있다.
이 춤이 실려 있는 무보로는 『악학궤범』 권5와 1893년의 『정재무도홀기』가 있다. 현재 국가무형유산으로 지정된 학무는 그 탈과 의상 · 춤사위 · 음악 등이 전통적인 학무와는 다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