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무도홀기』는 조선 후기 고종 연간에 궁중 정재의 절차를 기록한 예술서이다. 연습용, 공연용, 임금 어람용, 왕실 여성 어른용 한글 홀기 등이 있었다. 현재는 고종대의 무도홀기만 전한다. 무도홀기는 무원의 배열도와 춤의 진행 절차를 서술했다. 배열도에는 각 정재의 역할 및 배치와 출연자의 이름이 제시되었다. 춤의 진행은 박을 기준으로 어떤 음악에 맞추어 누가 어떠한 동작을 하는가를 서술했다. 국립국악원과 장서각 소장본에 수록된 정재는 총 45종목이다. 『정재무도홀기』를 바탕으로 단절되었던 정재 전통을 복원할 수 있다.
궁중 연향을 앞두고 무도홀기를 만들었고, 연습을 위한 홀기와 본 공연인 내연(內宴), 외연(外宴) 등을 위한 홀기를 별도로 제작했다. 또한 임금에게 올리는 어람용, 왕세자에게 올리는 예람용을 비롯하여, 왕실 여성 어른에게는 언서(諺書)로 쓴 홀기를 올렸다. 현재는 고종대의 무도홀기만 전한다.
필사본. 홀(笏) 모양의 종이를 병풍식으로 접게 되어 있다. 장서각에 소장된 13종의 홀기는 병풍식 첩장(帖裝, 旋風葉)이다. 국립국악원에 소장된 1종은 본래의 홀기를 나누어 종이에 다시 붙여 선장본(線裝本)으로 다시 묶었고, 1893년(계사)을 중심으로 네 시기의 홀기가 섞인 것이다. 일부는 개인이 소장했다.
장서각 소장 무도홀기는 다음과 같다. 1877년(정해) 진찬의 『사자무항장무무도홀기(獅子舞項莊舞舞圖笏記)』, 1894년(갑오) 진연의 『외진연시무동각정재무도홀기(外進宴時舞童各呈才舞圖笏記)』이다. 1901년(신축) 진찬 관련 홀기는 3건으로, 『여령각정재무도홀기(女伶各呈才舞圖笏記)』 2건과 1901년(신축) 진찬 익일회작의 『여령각정재무도홀기』이다.
1901년(신축) 진연 관련 홀기는 6건으로, 내진연의 『여령각정재무도홀기』, 외진연의 『외진연시무동각정재무도홀기』와 이를 음독(音讀)하여 언문으로 작성한 『외진연시무동각졍ᄌᆡ무도홀긔』 2건, 회작의 『회작시여령각정재무도홀기(會酌時女伶各呈才舞圖笏記)』와 이를 언문으로 작성한 『회작시녀령각졍ᄌᆡ무도홀기』이다. 그밖에 연대미상의 『무동각정재무동홀기』와 『여령각정재무도홀기』가 전한다.
공간적으로 무원의 배치를 알려주는 배열도와, 시간적으로 춤의 진행을 알려주는 춤절차의 두 부분으로 무도홀기를 서술했다. 일종의 그림인 배열도에는 각 정재의 역할 배치와, 출연자인 여령(女伶)이나 무동(舞童)의 이름이 제시되었으며, 여령의 경우에는 소속이나 출신지역도 명시되었다. 춤의 진행은 박(拍)을 기준으로 어떤 음악에 맞추어 누가 어떠한 동작을 하는가를 서술했다.
국립국악원과 장서각 소장의 『정재무도홀기』에 수록된 정재는 모두 45종목으로 아래와 같다. 고려 때부터 전하는 당악정재는 헌선도(獻仙桃) · 수연장(壽延長) · 오양선(五羊仙) · 포구락(抛毬樂) · 연화대(蓮花臺), 고려 때부터 전하는 향악정재는 무고(舞鼓) · 무애(無㝵: 순조대 재편) · 아박(牙拍: 고려 때의 動動 재편)이 있다.
조선 전기에 창작된 당악정재는 몽금척(夢金尺) · 육화대(六花隊) · 하황은(荷皇恩), 조선 전기에 창작된 향악정재는 봉래의(鳳來儀) · 학무(鶴舞) · 처용무(處容舞: 조선시대 재편)이다. 조선 후기 순조 이전에 등장한 검기무(劍器舞) · 광수무(廣袖舞) · 선유락(船遊樂) · 초무(初舞) · 첨수무(尖袖舞)이다.
순조대 창작 정재는 가인전목단(佳人剪牧丹) · 경풍도(慶豐圖) · 만수무(萬壽舞) · 망선문(望仙門) · 무산향(舞山香) · 박접무(撲蝶舞) · 보상무(寶相舞) · 사선무(四仙舞) · 연백복지무(演百福之舞) · 영지무(影池舞) · 장생보연지무(長生寶宴之舞) · 제수창(帝壽昌) · 첩승무(疊勝舞) · 최화무(催花舞) · 춘대옥촉(春臺玉燭) · 춘앵전(春鶯囀) · 헌천화(獻天花) · 고구려무(高句麗舞) · 공막무(公莫舞) · 연화무(蓮花舞) · 춘광호(春光好) · 침향춘(沈香春) · 향령무(響鈴舞)이다.
헌종대 궁중에서 초연된 관동무(關東舞), 고종대 지방에서 궁중에 들여온 잡극으로 성천의 사자무와 선천의 항장무(項莊舞) 등이다.
『정재무도홀기』를 바탕으로 단절되었던 정재 전통을 복원할 수 있다. 또한 같은 연향의궤의 정재 기록에서는 춤절차가 소략하게 서술되고, 정재악장이 생략되기도 했는데, 무도홀기에는 모두 제시되어 자료적 가치가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