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궁춘만(漢宮春慢)」은 고려시대 궁정에서 연주하였던 작자 미상의 송나라 사악(詞樂)이다. 『고려사(高麗史)』 악지(樂志)에 단독으로 가창하는 주1의 하나로 악보가 없이 가사만 수록되어 전한다. 『고려사』 악지 외에 이후의 어떤 문헌에도 이 곡에 관한 기록이 발견되지 않는 점으로 미루어 고려시대의 궁정 음악으로만 활용되었을 뿐, 고려시대 이후 실전된 것으로 보인다.
『고려사』 악지에 수록된 「한궁춘만」은 사패(詞牌) 이름이 본래 「한궁춘」이며, 북송 전기의 장선(張先: 9901078)이 지은 ‘만사(慢詞)’ 「한궁춘」과 글자 수, 운(韻), 구식(句式)이 완전히 같다. 이 두 수의 사(詞)는 정체(正體)인 조충지(晁冲之: 10731126)의 「한궁춘」과 다르게 시작구인 제1구에도 운이 적용되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선의 사(詞)에는 ‘만’자가 붙지 않고, 동일한 사체(詞體)로 이루어진 『고려사』 악지의 사(詞)에는 ‘만’자가 붙었다. 이는 「한궁춘만」과 「한궁춘」이 이칭으로 통용됨을 의미한다.
「한궁춘만」의 글자 수는 총 96자로 전단[47자, 미전사에 해당]과 후단[49자, 미후사에 해당]을 갖춘 쌍조(雙調)의 사(詞)이다. 전단 · 후단이 각각 주2이며, 각각 9구절(句節)로서 전단의 구식(句式)은 ‘4. 5, 4. 4, 6. 4, 7[3、4]. 7[3、4], 6.’[47자]로 이루어졌다. 후단은 시작구인 제1구가 6자로 전단의 제1구의 4자에 비해 2자가 많아 총 49자가 된다.
곡이름에 붙은 ‘만’은 ‘만사(慢詞)’의 뜻으로 ‘만곡자(慢曲子)’로부터 유래한 명칭이다. ‘만곡자’가 ‘급곡자(急曲子)’와 대비된다는 점에서 ‘만’이 속도와 관련되는 용어임을 알 수 있다. ‘만사’는 바로 느린 악곡[만곡(慢曲)]에 가사를 지어 넣어 곡조가 길고 박자가 느린 사악(詞樂)을 가리킨다.
일반적으로 사(詞)는 단조(短調)[홑단], 쌍조(雙調)[전단과 후단 두 단으로 구성], 삼사첩(三四疊)[3단 혹은 4단으로 구성]에 관계없이 전체 글자 수에 따라 58자 이내를 소령(小令), 59자~90자를 중조(中調), 91자 이상을 장조(長調)로 구분하는데, 대체로 ‘만’은 자수가 많은 장조와 결합된다. 「한궁춘만」은 전단 · 후단을 합쳐 총 96자라는 점에서 장조에 속하며, ‘만’의 속도로 노래하기 때문에 연주 시간이 제법 긴 악곡에 속한다.
가사 내용은 봄부터 겨울까지 계절의 변화와 세월의 빠름, 태평성대에 누리는 즐거움을 노래하였다.
전단
춘일지지.(春日遲遲.)[봄날이 길고도 긴데]
平仄平平.
칭유인진일, 상연방비.(稱遊人盡日, 賞燕芳菲.)[노는 사람들이 종일을 보내기에 좋으니 꽃다운 풀을 보며 즐기네.]
仄平平平仄, 平仄平平.
신하범수, 점입하경운기.(新荷泛水, 漸入夏景雲奇.)[새로 핀 연꽃이 물에 뜨더니 점점 구름이 기이한 여름경치로 들어가네.]
平平仄仄, 仄平平仄平平.
염광이식, 우조시、영락풍서.(炎光易息, 又早是、零落風西.)[뜨거운 빛이 쉽게 식어 또 서풍(西風)에 나뭇잎이 일찍 떨어지네.]
平平仄仄, 仄仄平、仄仄平平.
백로점、황금국예,(白露點、黃金菊蘂,)[흰 이슬은 점점이 황금빛 국화 꽃술에 맺히고]
平仄仄、平平仄仄,
조운모설비비.(朝雲暮雪霏霏.)[아침 구름이 저녁에는 부슬부슬 내리는 눈이 되네.]
平平仄仄平平.
후단
광음신속여비.(光陰迅速如飛.)[세월이 나는 듯이 빠르니]
平平仄仄平平.
요주붕공환, 차임개미.(邀酒朋共歡, 且恁開眉.)[술벗을 맞이하여 함께 즐기면서 또 이처럼 웃네.]
仄平平仄仄, 平仄平平.
청가묘무, 갱겸옥관요호.(淸歌妙舞, 更兼玉管瑤箎.)[맑은 노래와 교묘한 춤에 또 아름다운 음악이 더해지네.]
平平仄仄, 仄平仄仄平平.
인생이로, 우태평、차락희희.(人生易老, 遇太平、且樂嬉嬉.)[인생은 늙기 쉽나니 태평한 시절을 만났으니 바야흐로 즐겁게 놀리.]
平平仄仄, 仄仄平、仄仄平平.
막대해、주안돈각,(莫待解、朱顔頓覺,)[붉은 얼굴로 문득 기다리지 말아야 함을 깨닫나니]
平仄仄、平平仄仄,
연래불사당시.(年來不似當時.)[근년에는 한창 때와 같지 않다네.]
平平仄仄平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