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성전보총국

  • 역사
  • 제도
  • 개항기
1885년(고종 22) 8월 20일(양력 9월 28일) 서로전선(西路電線)을 운영하기 위하여 청나라에서 한성(서울)에 설치한 관청.
제도/관청
  • 설치 시기1885년 9월 28일
  • 폐지 시기1894년 이후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강진갑 (한양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6년 04월 23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1885년(고종 22) 8월 20일(양력 9월 28일) 서로전선(西路電線)을 운영하기 위하여 청나라에서 한성(서울)에 설치한 관청.

내용

1885년 6월 조선과 청나라 사이에 조청전선조약(朝淸電線條約)이 체결되었는바, 그 내용은 조선과 청나라가 합작하여, 인천을 기점으로 서울을 경유하여 청나라의 봉황(鳳凰)까지 연결하는 전선, 즉 서로전선을 가설하여, 청나라가 자본과 기술을, 조선이 전선가설에 필요한 전신주와 노동력, 그리고 전선 경비병력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전선가설공사는 바로 착공되어, 같은 해 8월에는 인천∼서울간 전선가설공사가 완료되었고, 이에 따라 서로전선의 가설과 전보업무를 총괄하기 위하여 이 한성전보총국이 설치되었다. 산하에 인천 · 평양 · 의주 분국을 두었다.

운영은 조청전선조약에 따라 청나라측이 담당하였고, 따라서 직원은 모두 청나라인으로 구성되었는데, 총국의 업무를 총괄하는 총판(總辦), 전선기술 및 기타 실무를 담당하는 공장(工匠)과 사사(司事), 견습생인 학생(學生)이 있었고, 분국에는 각 분국의 업무를 총괄하는 위원이 있었다.

그러나 조선인 학생도 파견되어 기술습득을 위하여 함께 견습하였다. 1894년 청일전쟁 발발 후 서로전선이 일본군에 점령당하자 그 기능을 상실하고 실질적으로 해체되고 말았다.

참고문헌

  • - 『통리교섭통상사무아문일기(統理交涉通商事務衙門日記)』

  • - 『청광서조중일교섭사료(淸光緖朝中日交涉史料)』

  • - 『일본외교문서(日本外交文書)』

  • - 『전기통신사업80년사』(체신부, 1966)

  • - 『구한말조약휘찬』(국회도서관입법조사국, 1965)

  • - 『문헌에 따른 근대통신(우체·전신·전화)역사』(이봉재, 진한엠앤비,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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