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화서 화원으로서의 활동은 주로 의궤를 통해 확인된다. 1659년의 효종국장도감(孝宗國葬都監)을 시작으로 1684년의 명성왕후국장도감(明聖王后國葬都監)에 이르기까지 현종 대부터 숙종 대에 걸쳐 약 13건의 도감에 참여하였다.
1682년(숙종 8)에는 에도막부의 5대 쇼군 도쿠가와 쓰나요시[德天綱吉]의 즉위를 축하하기 위한 통신사행의 수행화원으로 일본에 다녀왔다. 일본 문헌인 『고화비고(古畫備考)』에는 함제건이 수묵도를 그렸으며, 그의 「죽국도(竹菊圖)」에 죽암(竹庵) 박경후(朴慶後)의 찬(贊)이 있다는 기록이 주1 일본의 유학자인 히토미 지쿠도[人見竹洞, 1638~1696]가 조선 사행원과 필담을 나눈 기록을 모은 『한사수구록(韓使手口錄)』 등에는 함제건이 양국 문사들의 교류 자리에서 일본 관원과 문사들에게 그림을 그려준 일이 기록되어 주2
이상의 기록에서 함제건이 통신사행 동안 상당한 서화 요청에 응수하였음이 확인된다. 뿐만 아니라 통신사행 이후에도 일본 측에서는 함제건의 그림을 지속적으로 요청하였다. 쓰시마번[對馬藩]에서는 이듬해에 2회에 걸쳐 조선 측에 함제건의 작품을 요청하였고, 조선에서는 병풍 2쌍씩을 동래부를 통하여 전달하였다.
일본 문헌에 남아 있는 함제건의 그림은 주로 묵죽화, 죽국도 등의 사군자와, 여동빈도(呂洞賓圖), 철괴자(鐵拐子)와 같은 신선도류이다. 함제건이 통신사행 당시 그린 그림 중에 「묵죽도(墨竹圖)」[1682년 추정, 일본 개인 소장] 한 점이 현재까지 전하고 있다. 비단에 그려진 그림으로, 크기는 98.2×31.2㎝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