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충청남도 당진시 합덕읍에 있었던 합덕평야를 관개하던 저수지.
내용
다만, 합덕지를 일명 연지(蓮池)라고도 부르는 것으로 보아 연이 생장할 수 있는 수심이라면 수심(水深)은 그리 깊지 않았으며, 저수면적에 비하여 저수량은 그리 많지 않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합덕지의 기원은 미상이나 『당진군지(唐津郡誌)』에 따르면, 후백제 견훤(甄萱)이 이곳에 둔전(屯田)을 개간, 1만 2,000명의 둔병(屯兵)과 말 6,000필을 주둔시키면서 이 둔병에 의하여 합덕지가 개설되었다고 전하고 있다.
합덕지는 연꽃이 많았으나 남생이가 많이 자생하여 전설에는 둔병의 숫자가 이 남생이 숫자만큼 많았다고 한다. 또한, 합덕(合德)이라는 지명도 둔병들의 덕을 합치는 곳이라는 뜻에서 붙여졌다고 한다. 이광린(李光麟)의 『이조수리사연구(李朝水利史硏究)』에 따르면 합덕지는 1768년(영조 44) 홍양호(洪良浩)가 홍주목사(洪州牧使)로 부임하면서 1만 1,000명의 군내 장정을 동원해 준설 및 보수공사를 한 것으로 되어 있다.
또, 1778년(정조 2)에는 군민 4,553명과 인근 군민 3,500명을 동원하여 결괴된 부분 2개소를 수축하였고 1792년에도 군민 3,000명과 인근 군민 3,500명을 동원하여 수축하였으며, 그 뒤에도 해마다 인근의 천안(天安)·덕산(德山)·면천(沔川) 등의 읍민의 협조로 필요할 때마다 보수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합덕지는 1964년 폐제(廢堤)되기 이전까지 합덕평야의 쌀생산을 위한 유일한 용수원이었다.
참고문헌
- 『옛수리시설에 관한 학술자료』(례당농지개량조합, 1986)
- 『당진군지』(당진군, 1983)
- 『이조수리사연구』(이광린, 한국연구원, 19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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