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비석은 창마마을 입구 당산(堂山)의 중심부에 있다. 당산에는 큰 소나무가 있고, 그 중앙에 선돌 형태로 서 있었으며, 오랫동안 신앙 대상물이 되어왔는데, 근래까지도 이 마을에서 이 곳에서 산제(山祭)를 지냈다고 한다.
이 비는 1989년 5월동국대학교 경주캠퍼스의 신라문화연구소 김상현(金相鉉)교수에 의하여 조사되어 알려졌다. 조사 당시 모습은 원래 언덕에 붙어 있었는데, 위로부터 약 90㎝ 정도까지는 언덕의 흙과 비면 사이에 약 60여㎝ 정도의 간격이었다.
비신의 하단 약 60㎝ 정도는 땅에 묻혀 있고 언덕에 기대어 서 있었다. 비의 재질은 화강암이며, 비신의 높이 265㎝, 최장 너비 56㎝, 두께 약 35㎝ 정도이다. 비문이 새겨져 있는데, 서체는 북위풍(北魏風)의 해서(楷書)이고, 자경(字經)은 대개 5.5㎝ 정도이며, 판독한 글자는 전면(前面)의 1행 14자 정도에 불과하다.
판독이 극히 어려워 비의 연대나 성격은 단정할 수 없고, 심지어 가야비인지 신라비인지조차 분명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