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높이 85㎝, 입지름 58㎝, 두께 6㎝. 처음에는 해인사 대적광전(大寂光殿) 내부에 있었으나 지금은 해인사 성보박물관에 있다. 한 군데의 결손도 없이 보존상태가 매우 좋다. 정상에는 음통(音筒)이 없이 용뉴(龍鈕)만 만들어졌다.
이 용뉴는 조선시대 종의 특색을 따라 쌍두(雙頭)로 되어 몸체가 고리를 이루고 있다. 양쪽 머리가 서로 반대 방향을 향하고 입을 꼭 다문 모습이며, 입에 여의주는 표현되지 않았다. 음통이 없는 대신 쌍두용뉴 사이에 직경 4.2㎝의 원공(圓孔)이 있어 이것으로 음향공(音響孔)을 삼고 있다.
종 몸체의 상단에는 도드라지게 3조의 태선(太線)을 돌려서 견대(肩帶)를 삼고, 내면에는 21판(瓣)으로 된 단엽복련(單葉覆蓮)을 장식하였다. 상대(上帶)는 없이 견대 아래에 유곽(乳廓)과 보살상(菩薩像)이 4곳에 배치되었다.
유곽대는 주연을 도드라진 선으로 강조하고 그 내면에 당초문을 주출(鑄出)하여 새겨넣었다. 유곽 안에는 9개의 유두(乳頭)가 돌기되었는데, 유두는 연봉형으로서 연화판의 유좌(乳座)에 놓여 있다. 보살상은 입상(立像)이며 원형의 두광(頭光)과 보관(寶冠)·천의(天衣) 등이 표현되었다.
종의 몸체 중앙부에는 석 줄의 태선을 주출하여 돌려서 상·하단을 구획하였고, 그 위에는 유려한 보상당초문(寶相唐草文)을, 그 하단에는 구름 사이를 나는 운룡(雲龍)이 네 곳에 조식(彫飾)되었는데 사이사이에는 보주(寶珠)를 각 1개씩 도드라지게 넣었다. 하대(下帶)는 넓게 구획한 소문대(素文帶)이며, 운룡문과 하대의 사이에는 팔괘문(八卦文)과 매우 세조(細彫)된 파도문(波濤文)이 새겨졌을 뿐, 당좌(撞座)가 설치되어 있지 않은 것이 특색이다.
유곽 바로 아래에는 일렬로 돌린 해서체의 돋을새김 명문(銘文)이 있다. 그 내용은 “弘治四年 辛亥成海印寺大寂光殿鐘(홍치4년 신해성 해인사대적광전종)”이라 되어 있다. 따라서 이 동종은 1491년(성종 22)에 제작된 것임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