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향랑 설화」는 1702년(숙종 28) 선산(善山)에서 강물에 투신하여 죽은 여인 향랑의 비극적 삶을 다룬 설화이다. 조귀상(趙龜祥)은 「향랑전」으로 향랑의 이야기를 소개하였으며, 이후 전(傳)의 양식으로 다양하게 전승되었다. 향랑의 사건이 있었던 18세기 이후로 「향랑전」과 민간에서 전승되는 「향랑 설화」는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공존해 왔을 것으로 추측된다. 「향랑전」의 서술자들은 한결같이 향랑의 열녀성을 강조하고 있으나, 서술상으로는 계모와 남편의 학대가 중심적인 모티프이며 학처형 설화(虐妻型說話)라고 할 수 있다.
정의
1702년(숙종 28), 선산(善山)에서 강물에 투신하여 죽은 여인 향랑의 비극적 삶을 다룬 설화.
전승 및 기록
내용
주인공 향랑은 선산부(善山府) 상형곡(上荊谷)에 사는 박자갑(朴自甲)의 딸로 어려서부터 품행이 방정하고 성정이 정숙하였다. 그러나 성질이 불량한 계모가 향랑을 박대하였다.
향랑은 17세 때 같은 마을에 사는 임순천(林順天)의 아들 칠봉(七奉)의 아내가 되었는데, 칠봉은 그때 나이가 14세였다. 칠봉은 성질이 포악하여 향랑을 미워하기를 원수처럼 하였다. 향랑은 칠봉이 나이가 들면 나아지겠지 하였으나 그의 행실에 변화가 없어 생각 끝에 친정으로 돌아온다.
향랑이 친정으로 돌아오자 계모가 그녀를 박대하였다. 향랑이 다시 숙부댁으로 가니 처음에는 그녀를 받아 주다가 나중에는 개가할 것을 종용하였다. 향랑은 어쩔 수 없이 시가로 돌아갔으나 시부모가 그녀를 받아 주지 않았다. 이에 향랑은 할 수 없이 낙동강에 가서 빠져 죽을 결심을 하고 강가로 나온다.
그때 향랑은 초녀(樵女)를 만나 자신의 사정을 말하고 자신이 지은 「산유화가(山有花歌)」를 가르쳐 준 다음, 자기의 결백을 입증해 줄 것을 부탁하고는 투신한다. 초녀의 말을 들은 친정 아버지가 향랑의 시체를 찾아 나섰으나, 아버지에게 누가 될까 시체마저도 종적이 없다가, 찾는 일을 그만두고 돌아가려 하니 그때서야 시체가 물 위에 떠올랐다 한다.
변이
특징
의의 및 평가
참고문헌
원전
- 조귀상(趙龜祥), 「향랑전(香娘傳)」(『일선의열도』)
단행본
- 김균태, 「산유화가연구」(『한국판소리고전문학연구』, 아세아문화사, 1983)
- 조태영, 「열녀전 유형에서의 전형식의 발전에 관하여」(『한국판소리고전문학연구』, 아세아문화사, 1983)
논문
- 이춘기, 「香娘說話의 硏究」( 『한국민속학』 23, 한국민속학회, 1990)
- 최지녀, 「"향낭(香娘)"을 형상화하는 두 가지 방식 -향랑전과 향랑전설」(『국문학연구』 19, 국문학회, 2009)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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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일명 『일선의열도(一善義烈圖)』에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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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 『해총(海叢)』에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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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3
: 『눌은문집(訥隱文集)』에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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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4
: 『소곡유고(素谷遺稿)』에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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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5
: 『담정총서(藫庭叢書)』에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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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6
: 『죽헌집(竹軒集)』에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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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7
: 『자저(自著)』에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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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8
: 『일사유사(逸士遺事)』에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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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9
: 일명 『삼한습유(三韓拾遺)』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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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0
: 일명 『일선읍지(一善邑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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