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랑 설화 ( )

구비문학
작품
1702년(숙종 28), 선산(善山)에서 강물에 투신하여 죽은 여인 향랑의 비극적 삶을 다룬 설화.
이칭
이칭
향랑전설, 향낭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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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

「향랑 설화」는 1702년(숙종 28) 선산(善山)에서 강물에 투신하여 죽은 여인 향랑의 비극적 삶을 다룬 설화이다. 조귀상(趙龜祥)은 「향랑전」으로 향랑의 이야기를 소개하였으며, 이후 전(傳)의 양식으로 다양하게 전승되었다. 향랑의 사건이 있었던 18세기 이후로 「향랑전」과 민간에서 전승되는 「향랑 설화」는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공존해 왔을 것으로 추측된다. 「향랑전」의 서술자들은 한결같이 향랑의 열녀성을 강조하고 있으나, 서술상으로는 계모와 남편의 학대가 중심적인 모티프이며 학처형 설화(虐妻型說話)라고 할 수 있다.

정의
1702년(숙종 28), 선산(善山)에서 강물에 투신하여 죽은 여인 향랑의 비극적 삶을 다룬 설화.
전승 및 기록

조귀상(趙龜祥)은 「향랑전(香娘傳)」으로 향랑의 이야기를 소개하였으며, 이후 향랑의 이야기는 전(傳)의 양식으로 다양하게 전승되었다. 이 설화는 조귀상의 「향랑전」, 『선산읍지(善山邑誌)』의 기록 외에도 이안중(李安中)의 「향랑전(香娘傳)」, 이광정(李光庭)의 「임열부향랑전(林烈婦薌娘傳)」, 윤광소(尹光紹)의 「열녀향랑전(烈女香娘傳)」, 이옥(李鈺)의 「상랑전(尙娘傳)」, 김민택(金民澤)의 「열부상랑전(烈婦尙娘傳)」, 유한준(兪漢雋)의 「선산이열녀(善山二烈女)」, 장지연(張志淵)의 「향랑」이 ‘전’ 양식으로 전한다.

그 밖의 기록으로 신유한(申維翰)의 「산유화곡(山有花曲)」, 엄경수(嚴慶遂)의 「 부재일기(孚齋日記)」, 이희령(李希齡)의 「 약파만록(藥坡漫錄)」, 이노원(李魯元)의 「백월당소고(柏月堂小稿)」, 윤정기(尹廷琦)의 「팔도주현경상도상주조(八道州縣慶尙道尙州條)」, 이학규(李學逵)의 「산유화(山有花)」 서(序), 이덕무(李德懋)의 「향랑시(香娘詩)」 병서(幷序) 등이 있다.

내용

아래의 이야기는 『 일선의열도』, 『동국문헌비고(東國文獻備考)』, 『 동환록(東寰錄)』, 『한산세고(韓山世稿)』, 『의열녀전(義烈女傳)』 등에 수록되어 있으며, 내용은 각 편에 따라 약간씩 다르다.

주인공 향랑은 선산부(善山府) 상형곡(上荊谷)에 사는 박자갑(朴自甲)의 딸로 어려서부터 품행이 방정하고 성정이 정숙하였다. 그러나 성질이 불량한 계모가 향랑을 박대하였다.

향랑은 17세 때 같은 마을에 사는 임순천(林順天)의 아들 칠봉(七奉)의 아내가 되었는데, 칠봉은 그때 나이가 14세였다. 칠봉은 성질이 포악하여 향랑을 미워하기를 원수처럼 하였다. 향랑은 칠봉이 나이가 들면 나아지겠지 하였으나 그의 행실에 변화가 없어 생각 끝에 친정으로 돌아온다.

향랑이 친정으로 돌아오자 계모가 그녀를 박대하였다. 향랑이 다시 숙부댁으로 가니 처음에는 그녀를 받아 주다가 나중에는 개가할 것을 종용하였다. 향랑은 어쩔 수 없이 시가로 돌아갔으나 시부모가 그녀를 받아 주지 않았다. 이에 향랑은 할 수 없이 낙동강에 가서 빠져 죽을 결심을 하고 강가로 나온다.

그때 향랑은 초녀(樵女)를 만나 자신의 사정을 말하고 자신이 지은 「 산유화가(山有花歌)」를 가르쳐 준 다음, 자기의 결백을 입증해 줄 것을 부탁하고는 투신한다. 초녀의 말을 들은 친정 아버지가 향랑의 시체를 찾아 나섰으나, 아버지에게 누가 될까 시체마저도 종적이 없다가, 찾는 일을 그만두고 돌아가려 하니 그때서야 시체가 물 위에 떠올랐다 한다.

변이

변이의 양상은 각 편마다 다양하게 나타나지만 향랑 이야기의 서술 방식은 몇 개의 모티프들이 반복되어 나타나는 형식이다. 서술 구조상에 나타나는 모티프는 계모 학대 모티프와 남편 학대 모티프, 그리고 숙부의 핍박 모티프와 주인공의 투신 모티프로 볼 수 있다.

이본(異本)에 따라 첫 번째 계모 학대 모티프가 없는 것도 있으며, 숙부의 핍박 모티프도 숙부가 이모로 대치되기도 한다. 그 밖에도 친정 아버지의 무능함이 확대 서술된 것이 있는가 하면, 등장 인물들의 명칭에 약간의 차이가 나타나기도 한다. 또, 투신한 자리를 역사적 배경과 함께 구체화한 것이 있는가 하면 단순히 강이라고만 표현한 것도 있다.

특징

향랑의 사건이 있었던 18세기 이후로 「향랑전」을 포함한 다양한 기록들과 민간에서 전승되는 「향랑 설화」는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공존해 왔을 것으로 추측된다. 18세기 남성 문인들에 의한 「향랑전」은 열녀 이야기의 성격이 강하다. 반면, 20세기 초 신문, 잡지 등에서는 구전되는 「향랑 설화」를 각색하여 소개한 작품들이 다수 등장하는데, 향랑은 열녀의 이미지가 약해지고 남편에게 학대받고 가족에게 버림받아 목숨을 버리게 된 불쌍한 여인으로 그려진다.

의의 및 평가

이 이야기는 실제 사실이며 제시된 자료들도 실제 사실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서술자의 윤색이 두드러진 것은 대개 전(傳)으로 소개된 것들이며, 넓은 의미의 이야기라는 개념으로 설화라고 볼 수 있다.

「향랑전」의 서술자들은 한결같이 향랑의 열녀성을 강조하고 있으나, 실제 서술상으로는 계모와 남편의 학대가 중심적인 모티프이며, 학처형 설화(虐妻型說話)라고 할 수 있다.

계모의 첫 번째 학대는 전체 서술 구조상 크게 중요하지 않아 이본에 따라서는 생략되기도 한다. 두 번째 향랑이 친정으로 돌아왔을 때 계모의 학대는 계모만의 문제가 아니며 유교적 윤리관에 의해 부모가 혼인한 딸을 출가외인으로 인정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따라서, 이 서사체에서 핵심적인 모티프는 남편의 아내 학대라고 할 수 있다. 남편의 학대에 대한 아내의 죽음으로써의 항거는 우리 설화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모티프는 아니다. 그러므로 이 설화는 사회의 지배적 가치관보다 개인의 삶을 더 중시했다는 면에서 높이 평가될 수 있다.

참고문헌

원전

조귀상(趙龜祥), 「향랑전(香娘傳)」(『일선의열도』)

단행본

김균태, 「산유화가연구」(『한국판소리고전문학연구』, 아세아문화사, 1983)
조태영, 「열녀전 유형에서의 전형식의 발전에 관하여」(『한국판소리고전문학연구』, 아세아문화사, 1983)

논문

이춘기, 「香娘說話의 硏究」( 『한국민속학』 23, 한국민속학회, 1990)
최지녀, 「"향낭(香娘)"을 형상화하는 두 가지 방식 -향랑전과 향랑전설」(『국문학연구』 19, 국문학회,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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